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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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늦더위, 추석 택배 대란!

백화골 2011. 8. 31. 23:10

아, 힘든 하루였어요! 가을로 접어드는 듯 하다 다시 찾아온 늦더위 때문도 아니고, 늦더위와 함께 기승을 부리고 있는 모기떼 때문도 아닌... 바로 택배 사고 때문에!!

아침에 회원분에게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어제 도착했어야 할 택배가 아직까지 안 오고 있다고요. 서둘러 알아보니 중간 지점의 물류 집합소에서 물건을 제 때 올려보내지 않아 배송이 늦어진 경우더군요. 가끔씩 중간에서 오분류가 나면 이런 일이 벌어질 때도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 약속이나 한 듯이 회원분들에게서 줄줄이 전화와 문자가 오기 시작합니다. 알고보니 화요일에 제대로 택배를 받지 못한 분들이 한 두분이 아닌 거예요.

오전 내내 전화통 붙들고서 여기 알아보고, 저기 알아보고... 게다가 하루 늦게 막 도착한 택배 상자가 형편없이 찌그러진 채(당연히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도 찌그러진 채) 왔다는 회원분도 계시고... 이러다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나중에 택배사 직원분에게 들은 설명에 따르면, 모 택배회사 간의 합병설로 인한 파장,  열악한 작업 환경에 항의하는 모 택배회사 일용직 노동자들의 파업, 추석시즌 시작... 등등으로 인해 갑자기 예상치 못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택배 물량이 하루에 몰려버렸다고 하네요. 어휴, 제발 이 택배 소동이 하루만의 해프닝이길! 이번 주 목요일, 토요일에 받으실 회원분들은 제대로 택배를 받으실지 벌써부터 조마조마합니다. 해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택배 지연 사고가 많이 나는 바람에 올해는 일찍부터 ‘추석 방학’을 시작하고 2주 연속 발송을 쉬기로 했는데... 이렇게 일찍부터 추석 물류 대란이 시작될지는 몰랐습니다.

아무튼 택배가 늦게 가는 바람에 상자가 심하게 파손되었거나 농산물 일부가 상해서 도착한 경우엔 추석 택배 대란이라도 택배회사에서 사고 처리 후 보상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말씀 안하고 계신 분 계시면 꼭 알려주세요! 환불이든 보상 농산물이든 무엇이라도 해드리고 싶으니까요.

택배 때문에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그럼 며칠 동안의 시시콜콜한 백화골 근황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똑딱이 디카로 찍은 사진인데 마치 고속촬영이라도 한 것처럼 빗방울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합니다. 여우비. 요새 이런 비가 자주 내리네요. 빗방울이 밝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하지요?

여우비가 내리는 동안 밭 근처에 있는 이웃집 축사 처마 밑에서 비를 긋고 있는 중입니다. 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소처럼 나도 태평스러워집니다.

가을 무와 알타리무 씨 넣은 밭에 싹이 안 난 자리마다 다시 씨를 넣고 있는 중입니다. 무 종류는 대체로 싹이 아주 잘 나는 편이지만, 떡잎이 머리를 내밀자마자 대기하고 있다가 무참하게 잘라먹는 가을밭의 무법자 왕귀뚜라미들 때문에 이렇게 다시 씨를 넣어줘야 하는 곳이 꽤 됩니다. 

올해는 꿩이 아예 우리 땅콩밭에 눌러붙어 삽니다. 소리 지르며 내쫓아도 그때뿐. 고라니망도 푸드득 날아서 가뿐하게 넘어 들어오기 때문에 꿩에겐 소용이 없습니다. 꿩이 하도 파먹어서 올해 땅콩 수확량은 아무래도 형편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은 땅콩이나마 지켜볼까 하고 간이 허수아비를 세웠습니다. 고추막대기에 사람 입던 옷가지 몇 벌 걸어놓으니 그래도 꿩이 좀 덜 옵니다.

요 며칠 반가운 손님이 백화골에 머물렀습니다. 호주에서 살고있는 친구가 몇 년 만에 한국 나들이를 나와 놀러온 것인데요. 호주댁을 금새 장수댁으로 변신시켜서 온종일 밤고구마 캐기를 시켰답니다. (친구야, 미안해~ ^^) 멧돼지가 한 번 휩쓸고 간 뒤 남긴 것을 캔 것이라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주에 조금씩이나마 모든 회원분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고구마 캐기를 끝내고 다음날 친구와 함께 근처 논개 생가지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잘 알려져있진 않지만, 장수는 논개의 고향이라 생가지와 사당 등이 곳곳에 잘 단장되어 있답니다. 오랜 세월 호주에서 살더니 그동안 한국의 멋이 그리웠던지, 논개 생가지로 복원해놓은 초가집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며 사진을 찍어대네요.  

지난주에 보내드리고 남은 배추들로 김치를 담갔습니다. 남은 배추들은 포기가 전혀 안 찬 것들이 대부분이라 김치 색깔이 아주 푸릇푸릇합니다. 그래도 묵은 신김치마저 똑 떨어져 김치가 그리운 참이었는데, 햇김치 덕에 한동안 밥상이 풍성할 것 같습니다.

늦더위에 새삼스럽게 숨이 턱턱 막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햇볕에 이불 뽀송뽀송하게 널어 말리니 참 좋습니다. 달력 한 장 북~ 찢어내니 이제 9월이네요. 여름일에 지쳤던 몸 다시 뽀송뽀송하게 추스러서 가을일들 부지런히 시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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