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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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멧돼지 습격사건

백화골 2011. 8. 15. 22:24

고구마 밭에 멧돼지가 들어왔습니다. 지난주에 고구마순을 수확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고구마 밭이 하루 아침에 난장판이 되어 있네요. 밭에 멧돼지가 들어온 건 이곳에서 농사지은지 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파헤쳐진 고구마 밭 한가운데 서서 말 그대로 입을 쩍 벌리고 선 채 한동안 그냥 ‘얼음’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비가 오는 축축한 날씨라 질척한 밭에 발자국도 선명하게 남겼습니다. 그동안 하도 많은 습격을 받는 바람에 나름 눈에 익은 고라니 발자국이랑은 확연히 다릅니다. 집에 마침 한국의 야생동물 발자국들을 모아놓은 기념 손수건이 있어서 손수건에 나온 멧돼지 발자국 모양이랑 비교해보았습니다.

누가 봐도 확실한 멧돼지 발자국! 하지만 굳이 발자국 모양을 보지 않아도, 고구마 밭을 파헤쳐놓은 솜씨만으로 다른 산짐승이 아니란 것쯤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습격받은 곳은 밤고구마 밭. 밤고구마는 호박고구마보다 수확 시기가 빠르기 때문에 8월 말 쯤 캐서 보내드리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멧돼지란 놈이 고구마 알 굵어지는 냄새를 먼저 맡고 와서는 밭의 1/3 가량을 모두 뒤집어 업고서 고구마들을 포식하고 갔네요. 

아직 이르긴 하지만 멧돼지에게 먹히느니 차라리 고구마를 일찌감치 다 캐버릴까 하다가 방어막을 쌓기로 했습니다. 다른 농가들처럼 전기 울타리를 칠 수도 없는 일이고, 고구마 캘 때까지만 어떻게 못 들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한동안 고민하다가 문든 떠오른 아이디어, 바로 ‘돼지산성’입니다. (촛불집회 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이른바 ‘명박산성’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최근 부산에 다시 등장했다는 산성처럼 용접까지는 못했구요... ^^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멧돼지가 들어오는 길에 농산물 담는 컨테이너 상자를 층층이 쌓아올리고 검은색 부직포를 세겹으로 둘렀습니다. 물론 멧돼지가 힘으로 밀어붙힌다면 한방에 쓰러지고 말테지만, 시력이 매우 나쁘다는 멧돼지 눈에 거대한 검은 괴물이라든지, 위압적인 바윗덩어리로 보이길 기대하며 쌓은 임시 방어막입니다. 방어막을 쌓은지 3~4일 지났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추가 멧돼지 피해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발 고구마 다 캘 때까지는 돼지산성이 역할을 해주기를... 그래야 회원분들께 맛있는 햇 밤고구마를 조금씩이라도 보내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멧돼지 피해 만큼 눈에 확 띄는 피해는 아니지만, 요즘 그에 못지않게 골머리 썩고 있는 것이 바로 배추입니다. 열심히 밭 만들고 심어준 가을 배추 모종을 귀뚜라미와 메뚜기 떼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잎만 얌전히 뜯어먹는 게 아니라 생장점을 똑 끊어서 죽여버리기 때문에 다시 심을 수밖에 없습니다. 1주일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죽은 자리에 다시 심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심한 날은 하루에 100주 이상 죽어나가기도 합니다. 귀뚜라미 개체수를 줄이려고 아예 파리채를 들고 다니면서 보이는대로 때려 잡기도 하지만, 요즘이 워낙 이런 풀벌레들 기세가 강한 때라 좀처럼 죽어나가는 배추 수가 줄지를 않네요. 주변 농민들에게 물어보니 농약 한 번만 치면 이런 걱정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친환경 농사가 이럴 때 유독 어려운 것 같아요. 귀뚜라미와의 싸움은 아무래도 한동안 계속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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