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가까워지면서 아까시꽃 향기가 숨막힐 듯 짙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꽃소식이 한 발 느리게 날아오는 장수에선, 아까시꽃 역시 다른 지역보다 한참 뒤늦게 봉오리를 터뜨렸습니다. 일하다보면 코에 맡아지는 건 온통 아까시꽃 향기밖엔 없을 정도지만, 벌이나 나비들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아까시꽃, 토끼풀꽃, 고추꽃, 오이꽃...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별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꽃들도 빼놓지 않고 공평하게 고루고루 날아다니는 걸 보면 말이지요.
부지런한 곤충들의 도움도 받았겠다, 여러 가지 식물들이 슬슬 귀여운 아기 열매들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고추꽃이 지고 난 자리에 매달린 첫 열매입니다. 아직도 열매 끝에는 꽃송이의 흔적을 매달고 있네요. 개미 한 마리 바쁘게 지나가는 걸로 봐서, 이놈이 고추에 진딧물을 옮겨놓을 생각인가봅니다. 여름 내내 지루하게 이어질 진딧물과의 싸움이 벌써 시작되고 있습니다.
암꽃을 머리에 이고 태어나는 애호박입니다. 호박은 자라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작물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손톱만큼 작은 크기의 호박도 며칠 새 당당한 애호박으로 자라있곤 하지요. 하지만 가족회원 분들께서 애호박을 받아보시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렇게 일찌감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는 암꽃들과는 달리, 숫꽃들은 한없는 게으름뱅이거든요. 숫꽃들이 빨리 피어주지 않으면, 이 아기 호박들은 결국 수정이 안 돼 맥없이 떨어져버리고 만답니다.
아기 오이 열매들은 언제나 웃음을 머금게 합니다. 너무 귀엽지 않나요? 3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지만, 생긴 모습 만큼은 어른 오이를 그대로 줄여놓은 듯 꼭 닮아있습니다. 마치 미니어쳐 오이를 보는 듯해요. 올봄에 심은 오이는 백다다기 오이랍니다. 먼저 백다다기를 보내드리고, 여름이 되면 더위에 강한 가시오이를 보내드릴 계획이에요. 오이는 앞으로 약 2주 정도 지나면 회원분들 집으로 갈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주에 보내드린 뽕잎나물은 다들 잘 받으셨지요? 잎도 열매도 맛있는 뽕나무에선 이제 오디 열매가 하루하루 커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색이 들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겠지만요. 아, 까맣게 익은 오디 맛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아마 뽕나무 앞을 지나다니는 새들도 비슷한 심정이겠지요?
이건 무슨 열매일까요? 오이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한 눈에 정체를 알 수 있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놈처럼 알쏭달쏭 스무고개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열매들도 있지요. 정답은~ 바로 ‘배’입니다.
오늘 일하다 문득 하늘을 보니 슬슬 초여름 하늘 빛깔이 나오는 것이 퍽이나 상쾌해 보입니다. 장수에선 아직도 한밤 최저 기온이 5~6도까지 떨어지곤 하지만, 한낮의 세상만큼은 이제 초여름의 문턱에 와 있네요. 풋풋한 아기 열매들이 여름 냄새 맡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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