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이번에 전국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렸다고요. 특별히 좋은 일로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장수 운운하는 뉴스를 들으니 공연히 반갑네요. 장수 사람 맞나봅니다. 사실 장수가 가끔씩 TV 뉴스를 탑니다. 주로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는 기상 뉴스를 통해서였는데, 비 때문에 뉴스 나오는 건 처음 봤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이렇게 3일 내내 한여름 장맛비 같은 폭우가 쏟아지다니, 이것도 이상 기후의 징조일까요. 다행히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물 폭탄’식으로 온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 내리는 식으로 와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농산물 발송하는 날. 그런데 아침부터 쏟아지는 장대비가 멈출 줄을 모릅니다. 고생 좀 하게 생겼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빗속을 뚫고 다니며 농산물들을 수확했습니다. 비오는 날 발송 작업을 하면 두 배로 힘이 듭니다. 우비를 입어도 어쩔 수 없이 몸이 젖어 점점 체온이 떨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손은 목욕탕에서 나온 것처럼 퉁퉁 불어 쪼글쪼글해지곤 합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하우스 안까지 물에 잠겼습니다. 채소들 역시 물에 푹 젖어있고, 뿌리에 달라붙은 진흙 때문에 모양새가 영 좋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발송 작업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포장을 하면서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과 흙으로 범벅이 된 채소들을 최대한 예쁘게 다듬어보지만, 아무래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회원분들이 받으시고 손질하기 힘들어하진 않을까, 혹시 가는 도중에 짓무르는 건 아닐까, 이런 염려 때문에 날씨처럼 마음도 찌뿌둥해지곤 합니다. 그래도 뭐, 날씨가 내 일정에 맞춰 항상 좋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몸과 마음을 추슬러가며 포장 작업을 마무리합니다. 이번 주엔 평소보다 야채들을 좀 더 많이 씻어주세요.
이번 주에 새로 등장한 열무와 근대입니다. 열무는 아직 많이 어려서 잎이 야들야들 부드럽습니다. 지금이 먹기 딱 좋을 때입니다. 초보 주부들일수록 배추나 열무 같은 채소를 받으면 난감해하시는 경우가 많지요. 열무 겉절이나 열무 물김치 같은 건 자신 없다, 하시는 분이라면(멀리 갈 것도 없이 제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 그냥 깨끗이 씻은 뒤 적당한 길이로 썰어서 쓱쓱 열무 비빔밥 만들어 드세요.
아니면 간장, 기름, 식초, 깨소금 넣고 버무려서 열무 샐러드 만들어 먹어도 맛있고요. 근대는 이번에 두 가지 품종을 심어봤습니다. 황경근대와 백경근대. 하나는 줄기가 노란색이고, 또 하나는 줄기가 하얀색입니다. 맛은 별 차이 없는 것 같고, 그냥 줄기 색깔이 다릅니다. 혹시라도 근대 받으신 뒤 ‘왜 어떤 건 노랗고 어떤 건 하얗지?’ 하고 궁금해하지 마시라고 이렇게 미리 말씀드려요. ^^
근대는 생으로 먹기도 하고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된장국인 것 같아요. 텁텁하게 쌀뜨물 받아서 멸치나 조개 몇 개 넣고 된장을 푼 다음, 보글보글 끓으면 근대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끝이랍니다.
비를 맞으며 발송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장수군 농민회장님이 농민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전체 문자! 그런데 내용이 마치 친구에게서 온 것처럼 친근하네요. 문자를 보니 갑자기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회장님이 시키는대로 해야지!” 발송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것저것 자잘한 일들을 서둘러 끝마친 뒤 쑥 한 줌을 뜯어다 막걸리와 쑥전으로 축축하고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재밌었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부턴 한동안 풀 잡는 데 정신을 쏟아야겠습니다. 며칠 비를 맞더니 풀들이 제 세상인 듯 껑충 키가 자라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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