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가족회원 농산물 발송을 1주일 정도 앞두고 있는 4월 마지막 주.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된서리가 아직도 겨울 기운이 완전히 물러간 건 아니라며 마지막 으름장을 놓고 있긴 하지만, 동쪽 하늘에서 해가 한뼘만 올라가 주어도 사방은 온통 봄기운입니다. 추위에 약해 그동안 이불 속에다 폭 감싸안고 키웠던 모종들도 이제 하나 둘 본밭으로 내보낼 때입니다.
고추, 애호박, 오이 모종을 하우스 안에 옮겨 심었습니다. 예전에 의류 관련 일을 하는 친구가 자기는 남보다 언제나 한 계절 앞서 산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겨울엔 이듬해 봄 신상품 준비하고, 봄에는 한여름에 어떤 패션이 유행할지 미리 연구한다구요.
오늘 모종을 옮겨 심다 보니 농사일도 비슷한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하얗게 된서리 내리는 계절이지만, 여름과 가을에 거둘 채소들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가며 준비해가는 일이니까요.
‘애호박’, ‘오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디선가 여름 냄새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심는 이 작은 모종이 여름엔 하우스 지붕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넝쿨로 자랄테고, 농산물 발송하는 날 아침이면 그 호박 넝쿨 속을 기어다니며 쏙쏙 달리는 애호박 따내기에 바쁘겠지요. 애호박과 오이 모종을 심으며 여름도 함께 심는 듯한 기분입니다.
가족회원 농산물 발송 시작을 5월 첫 주로 할까, 둘째 주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첫 주부터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월 3일부터 올해 첫 농산물이 배달될 예정입니다. 작물들 자라는 속도가 좀 느리긴 하지만, 산나물 들나물이라는 든든한 ‘믿는 구석’이 있는 관계로 그냥 일찍부터 발송을 시작하기로 했답니다.
올 봄에는 비가 꽤 자주 내리네요. 덕분에 일부러 물 줘야 하는 수고가 덜어져서 씨 뿌리는 농부 손이 한결 수월합니다. 촉촉하게 물오른 봄이 싱싱한 여름으로 이어지길 기다리는 나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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