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장수에도 봄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진달래부터 시작해 매화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올리더니, 오늘 아침 벚나무 꽃봉오리가 하나 둘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선 이미 벚꽃 진 지 오래인 곳이 많지만, 장수에선 이제 벚꽃철 시작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보는 꽃들이 왠지 반갑고도 애처로운 느낌입니다.
봄꽃들과 함께 백화골 채소들도 속도는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커가고 있는 중입니다. 완두콩과 열무, 봄무, 토마토가 막 싹을 내미었고요, 브로콜리와 배추, 양상추들은 이제 아기 상태를 벗어나 하루가 다르게 몸피가 불어나는 성장기에 돌입했습니다. 칼바람 꽃샘추위 속에서 비록 성장 속도는 더디지만, 죽거나 병드는 놈 없이 다들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올해 새롭게 농산물가족회원이 되신 분께서 다녀가셨습니다. 2박3일 머무르시며 백화골 주인장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도와주신 덕분에, 쌓여있던 일거리들이 확 줄어들었답니다. 에너지 문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아주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에너지 박사님이기도 하셨는데, 이론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에너지를 가능한 덜 쓰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저희도 많은 자극과 공부가 되었습니다. 발송 시작 전부터 이렇게 고마운 회원분과 만나게 되어 일하는 데 힘이 났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많이 진척된 덕분에 일요일엔 가벼운 마음으로 사과 과수원 하는 친구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가족회원들에게 매년 보내드리고 있는 배를 키우고 있기도 한 은진농장 친구인데요, 몇 년 전부터 이 집 안주인 소원이 통영에서 배를 타고 나가 외도 관광을 해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사과 과수원은 이제 곧 사과꽃 피는 철이 됩니다.
꽃이 피면 일정한 기간 안에 적화(사과꽃을 적절히 솎아주기)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며칠동안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이 시작됩니다. 적화 작업을 앞두고 있는 은진농장과 가족회원 발송을 앞두고 있는 백화골 푸른밥상이 ‘정신없이 일 바빠지기 전에 하루 날잡아 바람 쐬고 오자’ 에 뜻이 맞아 남쪽으로 함께 봄나들이 길을 떠난 것이죠.
그런데 이게 왠일!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통영에 도착한 뒤 알아보니 바람이 너무 세서 배 출항이 모두 정지되었다고 하네요. 허탈한 기분으로 외도 대신 구경간 곳, 동피랑 마을입니다. 재개발 위기에 놓인 작은 산동네 마을에 예쁜 벽화들을 그려넣어 철거를 막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해진 마을입니다. 동피랑 마을은 생각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예뻤지만, 한편으론 집 앞으로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하루종일 붐벼대면 사는 주민들은 불편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동피랑 마을도 보고, 충무김밥도 먹어보고, 달아공원도 올라가보고... 아쉽지만 나름 즐거웠던 통영 관광을 마치고 다시 장수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햇빛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 곳곳에 핀 봄꽃들이며 나무의 새순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생각해보니 4, 5월은 한창 바쁜 철이라 이렇게 마음 잡고 멀리까지 꽃구경 나간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집 뒤가 바로 산이고, 앞마당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지만, 길에서 만나는 봄꽃들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바쁜 일철 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 다녀온 나들이길이라 그런지 더욱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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