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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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스님과 함께 감자 심기

백화골 2011. 3. 9. 18:02

재작년 네팔 여행길에서 만나 알게 된 현우스님이 장수에 오셨습니다. 올해 74살 되시는 비구니 스님인데, 주지 스님 자리를 일찌감치 내놓고 나온 뒤 1년 중 거의 대부분을 바람 따라 인연 따라 길로 돌아다니며 사시는 만행승이십니다.

돈도 없고 영어도 못 하시면서 세계 방방곡곡을 홀몸으로 어찌나 자유롭게 잘 다니시는지, 스님 여행 얘기를 듣다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또한 열정적인 어조로 “고정관념은 NO!”를 캐치프레이즈 마냥 늘 외치고 다니시는 스님 주변에선 언제나 왁자지껄한 사람들과 밝은 웃음꽃이 떠나지 않습니다.

“스님, 시간 되시면 장수 꼭 한 번 놀러 오세요.”

항상 뭔가에 매어있는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말을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만, 몸도 마음도 가벼운 스님께선 정말 어느 날 아침 전화하셔서 “나 오늘 장수 갈게.” 하시더니 바랑 하나 메고 훌쩍 오신 겁니다.

70이 훨씬 넘은 노인이 몇 시간 동안 전철에 기차에 버스를 갈아타가며 힘들게 오셨는데도 얼굴에 피곤한 기색 하나 없고 역시 만나자마자 유쾌한 얘기꽃을 피웁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의 생을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가 얼마나 감동적이었가를 얘기하고, 여행 중 만난 기독교 선교단체 회원들과 마음을 나누었던 일화를 얘기하시는 스님에겐 종교나 종파의 구분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노력도 좋지. 그런데 안 되는 거 되게 하려고 힘들이지 마. 노력보다는 집중을 하라고. 그렇게 집중해서 뭔가 결정했으면 그 길에 대해 힘들어하지 말고. <반야심경>에서 얘기하듯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느니.”
끝없이 이어지는 농담과 재담 가운데서도 촌철살인 같은 한말씀 잊지 않으시네요.

스님이 오신 날 마침 감자 심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쉬고 계시라고 극구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밥값은 해야 한다’며 감자 심는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장수까지 걸음 하셔서 도와주신 고마운 마음 덕분에 올해 감자 농사는 더욱 잘 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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