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폭설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습니다.
산간 지방인 장수에서야 다른 지역에선 꽃놀이 한다고 들썩이는 3~4월에도 눈발 내리는 게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화끈하게 쏟아지는 3월 눈은 또 처음 봅니다. 지금쯤 슬슬 하우스 작물들 들어가기 시작해야 할 땐데 이렇게 계속 흐린 날씨에 눈비가 쏟아지니 애가 탑니다. 요즘 농민들은 “올해 날씨가 농사짓기 힘들겠어.”하는 말을 인사 대신 달고 다닙니다.
그래도 때를 놓치지 말고 밭을 만들어야 하기에 기계 대신 삽과 괭이로 밭을 갈고 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우스 감자 심기는 어제서야 다 마쳤고, 오늘부터는 봄배추 심을 밭을 일구고 있는 중이랍니다. 고되고 지루한 일이지요.
그런데 평소 같으면 둘이 붙어 할 일을 지금은 며칠째 거의 남편 혼자서 낑낑대며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는 지금 ‘발가락 휴가(?)’ 중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어이없이 발가락을 다친 사건은 작년 11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해 농사를 다 정리하고 여행길에 나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때였는데, 밤에 집안 청소를 하며 무심코 방문을 닫다가 그만 오른쪽 둘째 발가락이 문틈에 끼어버린 겁니다. 온집안에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한바탕 난리를 치다가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고, 장수에선 치료 불가라고 하여 전주까지 119차 타고 달려가고... 아무튼 다음날 아침에야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찢어진 살을 꿰매고 엑스레이를 찍더니 뼈에 금이 갔다며 깁스를 채워주더군요. 발톱은 이미 빠져 온데간데 없었구요.
- 한동안 사용하던 목발입니다. 올 봄에 파종기로 사용해볼까 생각중입니다.
다행히 3주 동안 얌전히 깁스를 하고 지냈더니 상처가 잘 아물어 조금 일정이 늦어지긴 했지만 계획했던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등산용 스틱을 짚으며 절뚝이며 다니긴 했지만 여행도 별탈없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구요. 요즘엔 지팡이가 없어도 걷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답니다.
그런데! 이 발톱이라는 게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현재 발톱이 초승달만큼 올라와있는 상태인데, 아직까지도 발가락에 제대로 힘을 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걷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뛰거나 밭에서 삽질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태라는 거죠. 이것이 제가 요즘 뜻하지 않은 휴가를 즐기고 있는 이유랍니다.
갑작스런 사고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우선 발에 깁스를 하고 목발 짚으며 다니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여유가 없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할 때 자리 양보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심지어 줄을 서 있으면 뒤에서 “먼저 갑시다~”하면서 대놓고 새치기 하는 분도 있더군요. 정신없이 급하게만 돌아가는 사회 환경 속에서 느릿느릿 걷는 장애인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하는 거죠.
주변에 목발 짚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임신을 하게 되면 거리에 임산부만 보인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예전엔 미처 보이지 않던 것이 내 일이 되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빨리 발톱이 다 자라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발톱 자라는 속도가 정말 느리기 짝이 없네요.
낮에 한바탕 삽질을 하고 점심 먹으러 들어오던 남편이 마당에서 한참 꾸물거리기에 뭘 하나 나가보니 ‘호미손 눈사람’을 만들고 있더군요. 눈사람이라도 만들어서 같이 일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무튼 야물딱스럽게 호미를 양손에 쥐고 있는 서있는 눈사람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마치 ‘올해 농사도 신나게 시작해보자구!’ 하고 응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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