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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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0년

여행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백화골 2010. 2. 23. 22:48

올해도 겨울 여행을 마치고 백화골로 돌아왔습니다. 장수로 내려와 보니 세상 모든 곳이 하얗습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와 보니 오랫동안 집을 비운 후에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번 겨울 참 많이 추웠나 봅니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도와 보일러도 얼어 있고, 차도 시동이 안 걸리고, 컴퓨터도 안 켜집니다. 예전 같으면 화도 나고 어떡해야할지 당황했을 텐데,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번 여행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마음의 평화였나 봅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네팔, 미얀마, 태국입니다. 10년 전에 여행했던 네팔을 다시 구석구석 다녀봤습니다. 따뜻한 네팔 사람들의 온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마오이스트들이 정권을 잡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정치도 불안하고 경제 사정도 풀리지 않았더군요. 네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며 여행을 했습니다.

룸비니에서 만난 네팔 농부와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사원에 딸린 밭을 관리하는 분이었는데, 평생동안 농사밖에 모르고 산 농사꾼이랍니다. 밭은 잘 관리되고 있었으나, 배추 농사는 우리 기준으로는 영 시원치가 않더군요. 그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작물인 데다가, 우리처럼 김치용으로 속을 꽉꽉 채우는 통배추로 키울 필요가 없으니 그런가 봅니다. 말은 안 통해도 우리도 한국에서 온 농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심전심으로 밭 관리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쌈배추 따는 법도 직접 몸으로 가르쳐드렸구요.   

미얀마는 아직까지 서구 자본주의가 덜 들어간데다 불교 국가라 사람들이 친절한 나라입니다. 여행지 곳곳에서 과분한 친절과 사랑, 배려를 받았습니다. 명상센터에서 열흘간 수행을 하기도 했는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명상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마음이 많이 평화로워졌습니다.

미얀마에서 볶음 국수 속에 숨어있던 닭뼈를 잘못 씹어서 이를 다쳤습니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 하고 그냥 뒀는데 점점 고통이 심해지고 음식도 못 먹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태국에서 이를 뽑았습니다. 다행히 태국은 치과 기술이 세계적으로 발달된 나라라고 하네요. 말도 잘 안 통하는 상황에서 태국 치과 의사분들이 아주 친절하게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이를 다치는 바람에 마음먹고 여행하려던 태국 메콩 강변 부근의 이산 지역 여행을 중간에 그만두고 일정을 앞당겨서 돌아와야 했습니다.  뽑은 이를 심어야 해서 봄부터 만만치 않은 비용도 들어가게 생겼구요. 하지만 이를 다쳐서 고통스러운 내내 먹는 즐거움이나 치아의 소중함 등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백화골에 돌아와 집을 정상화하는데 1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문제가 하나둘씩 해결되는데 나름대로 재밌었습니다. 비용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쳐서 다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나무 보일러에 장작을 잔뜩 넣고 불을 때니 냉장고 같던 집이 18도까지는 올라갑니다.  

집에 온 후에 1주일 동안 거의 매일 눈이 내렸습니다. 그냥 아무 곳에도 못 가고 집에서 쉬었습니다.  간간이 눈 쓸고 눈 맞으며 바람을 쐬었습니다. 이제 슬슬 한 해 농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조금씩 기온이 올라가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곧 봄이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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