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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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벌레 먹은 사과

백화골 2009. 9. 15. 07:15

사과밭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사과 따는 일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표정이 굳어집니다.

내가 키운 사과도 아닌데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주제넘은 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 내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일손돕기 하러 온 손님들 접대하는 일에만 온 신경을 기울입니다.

지난 일요일, 벌써 몇 년째 매 해 가을마다 우리 백화골 푸른밥상에 맛있는 사과를 공급해주고 있는 민채네 사과밭에 일손 돕기를 하러 갔습니다.

민채네는 10년 전쯤부터 장수에 터를 잡은 선배 귀농자 분들인데, 최소량의 농약만 사용하는 저농약 재배를 하다가 작년부터 무농약 유기 재배로 사과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과 무농약 재배의 험난한 길은 작년부터 이미 예고된 바 있습니다. 주문은 밀려드는데 병든 사과가 많은 탓에 물량이 달려 힘들어 했었지요.

그리고 무농약 2년째를 맞은 올해! 작황이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밭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니 이건 딱 ‘초토화’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1단계, 탄저병 걸린 놈들이 1차로 먼저 우수수 나무 밑에 떨어져 있고, 2단계 : 그나마 나무에 매달린 놈들은 거의 대부분 벌레에 먹혀있고, 3단계 : 아주 드물게 벌레의 공격을 피한 놈들도 크기가 어찌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값나가는 중간 크기 이상의 선물용 박스는 한 상자 만들기도 힘들겠다 싶은 상황입니다.

사과 같은 과수 농사는 채소 농사와는 또 다릅니다. 기본적인 투자 비용이 워낙 많이 드는 데다 1년 딱 한 철 수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때 휘청 하면 그 손실이 어마어마합니다. 사과라는 작목 자체가 워낙 농약 없이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위험 부담 때문에 친환경을 생각하는 농가들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저농약 재배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올해 민채네 사과밭이 입은 금전적인 손실을 따지면 수 천 만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무농약 재배를 하겠다고 나섰을 땐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각오를 하고 나선 것일 테고요.

하루 일을 끝내고 회원들에게 보낼 벌레 먹을 사과를 구입해 왔습니다. 하루종일 내 손으로 따고 선별한 터라 말끔한 놈이 얼마나 적은지 잘 아는 마당에 차마 “벌레 안 먹은 놈으로 주세요.”라고 말할 순 없었습니다. 겉으론 허허 웃고 계시지만 이분들 마음은 그동안 얼마나 타고 또 탔을까 생각하니 벌레 구멍 송송 난 사과 한 알 한 알이 다 너무나 귀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 것, 어떤 일이 있어도 원칙을 지키는 것. 요즘 여기저기서 너무나 흔하게 쓰는 말이 돼버린 ‘유기농’에 대해 다시 한 번 맘 속 깊이 생각하고 되돌아 본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