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아직 농사철이 끝난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유래없는 풍년이라고 한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큰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 적도 없었고, 태풍도 지나가지 않았다. 풍년이면 농민들 얼굴에 웃음꽃이 필만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다. 공급이 지나치게 늘어서 가격이 더 떨어지게 생겨서다.
가뜩이나 정부에서 앞장서서 농산물 수입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역협정을 하고 다니는 이 때,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니 도무지 가격이 맞질 않는다. 농산물 양이 많이 나오니 일손은 더 들어가고 가격이 폭락하니 이래저래 흉년이든 풍년이든 서럽고 어렵기만 한 게 한국 농민들, 특히 소농들인 것 같다.
요즘 일조량이 많아져서 논농사가 완전 대풍이 예상된다고 다들 걱정이다(?). 이번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북한에 지난 10년 동안 보내던 쌀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바람에 쌀 재고가 엄청나게 늘었단다. 쌀 소비량이 줄어든 데다 북에 보내던 쌀마저 그냥 창고에 남아 있는 터에 풍년으로 쌀이 더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올해는 아예 쌀 수매를 안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독재 정권에 시달리며 굶는 북한 주민도 살리고 남한 농민도 살리는 대북 쌀 지원, 아무리 가진 자들을 위한 정권이라지만, 그래도 없는 사람들 숨통은 좀 튀워놔야 할 듯싶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사과밭에 가서 일을 돕는다. 올해 가장 크게 망하게 생긴 게 사과 농가라고 한다. 장수군에는 ‘홍로’라는 9월 초에 출하할 수 있는 단 맛이 강한 품종을 주로 키우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로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얼마 안 되어 사과 농가가 꽤나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지역 행정에서 집중적으로 홍로 심기를 지원하여 올해부터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홍로가 출하된단다. 이렇게 홍로가 쏟아져나오는 데다 올해 자연재해가 없어 대풍이라, 사과 값이 작년에 비해 1/3, 1/4이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열심히 농사짓는 과수원에서 일하니 우리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영하 15도인 겨울부터 전지 작업을 시작하여 봄, 여름, 가을 정말 굵고 굵은 땀방울을 흘렸을 사과밭 주인들. 하루종일 딴 사과를 차에 싣고 창고로 달려가는데 해가 진다. 이 사과는 가격이 얼마나 나올까? 다음날 가격을 보니 작년 이맘 때 보다 1/4 정도로 가격이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 이맘 땐 추석이라고 면소재지가 사람들로 꽉 찼었는데, 올핸 추석이 늦어서인지 영 썰렁하다. 밤이 되면 날씨도 추워져 마음도 스산하고. 장수사과 플랭카드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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