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 1년 농사의 고비다. 장마와의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올해 농사 성적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서울에 살 때는 사무실에 앉아 창 밖을 보며 비 많이 오네, 집에 갈 땐 그쳤으면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골에서 장마는 생존의 문제.
비 오는 날의 낭만 따위는 침투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장마 때 논밭 다 떠내려가거나, 침수 피해라도 입으면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작년 무시무시했던 장마와 집중호우를 경험해본 터라, 올해엔 철저히 준비하고자 노력했다. 우선 장마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참호(?) 수준의 배수로를 팠다

잘 자라는 토마토가 제일 걱정이 되었다. 1주일 정도만 있으면 수확할 때인데, 하필이면 이 때 장마가 오다니. 다른 작물도 그렇지만 토마토는 물관리가 제일 중요하다. 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시들음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거나 잘 자라지 못한다. 당도도 당연히 떨어진다. 그래서 며칠 간의 무식스런 삽질 끝에 배수로를 아예 참호처럼 깊게 팠다. 이제 하우스에 빗물이 고일 가능성은 없다.

토마토 농사짓는 사람들은 장마 때가 되면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배수도 문제지만 습도가 높아져서 배꼽썩음병이 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배꼽썩음병은 칼슘 부족이거나 습도가 많을 때, 잔뿌리가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할 때 발생하는데, 작년에는 거의 반 정도가 이 병으로 작살이 났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계란껍질칼슘(현미식초에 계란껍질을 용해시킨 것)을 만들어 500배 정도로 섞어서 관주해 주고, 토마토 배꼽에 붙어 있는 꽃잎도 열심히 떼어주었지만 그래도 몇몇 놈들은 벌써 배꼽썩음병에 걸렸다. 방비를 많이 해서인지 아직 이런 놈들은 극소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긴장을 풀 때가 아니다.

배수 안된 밭의 실상이다. 우리 밭은 아니고 이웃 밭인데,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배수로 정비할 시기를 놓쳤나보다. 감자 키가 진짜 작다. 항상 물이 고여있으니 잔뿌리가 뻗어나가지 못해 이 모양이 된 거다. 아마 캐보아도 별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노지밭의 경우 폭우가 쏟아지면 흙이 쓸려 내려간다. 돌로 석축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맨손으로 석축 쌓는 일은 정말 힘든 노동이다. 그래서 풀을, 그것고 잘 번지는 쑥을 밭의 경사진 배수로 부분에 심어놨다. 어제 비가 꽤 내렸는데도 흙이 하나도 쓸려 내려가지 않았다.

작년에 폭우로 흙이 완전히 쓸려 내려갔던 밭 입구다. 다시 흙을 채워 넣었는데, 마사토라 또다시 흘러내릴 것 같아 아예 공구리를 쳐버렸다. 레미콘 기사로 일하는 아랫마을 형님이 공사장 갔다 오는 길에 남은 생콘크리트를 쏟아 부어줬다. 밭 입구에 공구리를 치는 게 좀 마음에 걸렸지만 흙이 다 떠내려가는 사태보단 낳을 것 같았다.

마당에 깔아놓은 솔잎은 장마 때가 되자 더더욱 가치를 발한다. 보기에 좋고, 은은한 솔잎 향이 나서 맨발로 걷기에도 좋았는데, 비가 많이 와도 맨땅처럼 질척이거나 움푹 패이지 않는다. 이번 장마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가뜩이나 수입개방,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어려운 농촌에 피해 안 주고 가버리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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