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계속 안 내린다. 메마르고 건조한 날씨 속에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며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가물어서 이것저것 걱정스럽긴 하지만 초여름 기온이 일하기엔 참 좋다. 이번주엔 농산물들이 많이 쏟아져서 포장해서 보내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옥수수 밭에 비닐 멀칭을 하면 비닐을 뚫고 들어가는 버팀 뿌리 때문에 나중에 비닐 거두기가 참 힘이 든다. 그래서 멀칭을 안 하고 옥수수를 심었더니 역시나 풀이 정말 많이 났다. 옥수수도 비리비리하게 잘 크지 못하고 있다. 주말 내내 옥수수 밭 풀을 뽑았다. 다음엔 그냥 멀칭하고 심어야지.
당근을 수확했다. 아직 크기가 작아 다음 주에 수확할까 하다 그냥 뽑아서 보냈다. 크기는 작아도 이 시기를 놓치면 크지만 맛없는 당근이 돼버린다. 대부분의 작물은 약간 어린 상태가 제일 맛있다.
브로콜리와 양배추는 참 채산성이 안 맞는 농산물이다.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자라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양배추는 브로콜리보다 3주는 더 키워야 한다. 그런데도 이 두 작물이 가격이 싼 걸 보면 참 안타깝다. 퇴비도 많이 들고, 병충해도 엄청나서 방제하는 데 드는 품도 많고, 생육 기간도 오래 걸리고, 자리도 많이 차지하는데 이상하게 요즘 들어 계속 가격 폭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트에서 브로콜리 한 송이에 5~600원을 붙여놓고 팔고 있다. 아무리 관행농이라도 그 브로콜리 꽃대 한 송이 올리는 데 얼마나 많은 공력이 필요한지 아는 농민 입장에선 화가 나다 못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심지어 지난 겨울에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모든 고객에게 양배추 한 통씩 덤으로 나누어주는 모습도 보았다. 제주에서 대량생산을 해버리는 바람에 가격이 폭락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량 생산은 농촌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더디게 자라던 애호박이 드디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궤도에 오르고 나면 가을이 될 때까지 기세가 꺾이지 않고 기운 좋게 애호박이 달린다. 애호박을 유인하는 그물망이 엄청난 무게 때문에 벌써부터 끊어질 듯 팽팽하다. (실제로 작년엔 그물망이 끊어져 잇느라 고생한 적이 있다)
피망도 이번 주에 첫 수확을 했다. 아직까지는 벌레가 달려들지 않아서 수월하다.
깻잎에서 항상 잔류농약이 엄청나게 검출된다는데, 농사지어보니 알겠다. 진딧물이며 잎을 갉아먹는 벌레들이 몰려들어 깨끗한 잎 찾기가 쉽지 않다.
가뭄 때문인지 완두콩이 수확할 때가 지났는데 알이 통통해지지 않는다. 이번 주부터 수확하려 했는데 안 돼서 1주 더 미뤘다.
오이 농사가 잘 안 됐다. 몇 년째 잘 돼서 너무 오이를 만만하게 본 게 원인이다. 유인도 잘 해줘야 하고 물 관리도 잘 해야 하는 나름 예민한 작물인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모종 상태에서 힘이 없었고, 정식 하자마자 한파가 몰려오는 바람에 냉해를 입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따야할 때인데 오이가 잘 안 나온다. 다음에는 이번 작기를 교훈삼아 잘 키워야지.
아욱이 잘 자랐다. 아욱국을 좋아하는데 양이 회원 보낼 만큼만 나와서 한 번도 못해먹었다.
이 시절부터는 진딧물 방제를 무당벌레가 해준다. 농약을 안 치는 우리 마을에는 무당벌레들이 죽지 않고 잘 번식해서 여름이면 진딧물 방제를 위해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좀 심하게 진딧물이 온다 싶으면 한 두시간 투자해 주변 풀섶에서 무당벌레를 잡아다가 하우스 한 동 당 300마리 정도 넣어주면 가을까지 무당벌레들이 알아서 진딧물을 먹고 번식을 한다. 아주 사랑스런 놈들이다.
장수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유용미생물 EM과 광합성미생물을 무료로 나누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한 달여 만에 미생물을 받으러 가보니 사과 농사 짓는 분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써보니 어뗘?” 하며 사용 후기를 나눈다. 트럭들이 줄지어 와서 통에 미생물을 받아가는 게 꼭 약수터 풍경 같다.
하우스 감자 심었던 자리에 열무를 심었다. 열무는 싹 나오는 것도, 자라는 것도 속성이다. 심은지 이틀 만에 싹이 나온다.
여름 시금치도 심었다. 시금치도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쉬운 작물이다. 단 시금치는 추위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 시금치는 겨울 것처럼 맛깔스럽진 않다.
해질 무렵 또 씨를 넣었다. 처음으로 도전해보는 파드득나물 씨이다. 수확하고 씨 넣고, 한 작기 한 작기 돌아가고 새로운 작물을 키우는 게 참 재밌다. 저녁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계북 ‘사과의 꿈’ 농장의 성민이 형네 식구들을 불러 닭죽을 끓여 먹었다. 닭죽도 맛있게 잘 퍼졌고, 시원한 툇마루에 앉아 피우는 이야기꽃도 재미났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저녁엔 이웃과 닭죽 한 그릇 맛있게 나눠 먹었으니 오늘도 참 행복한 하루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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