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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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풀과 함께 보낸 토요일

백화골 2009. 6. 13. 23:33

농민에게는 주말이 없다. 아직 도시의 때가 덜 벗겨진 나는 주말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여가생활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일은 욕심일 뿐. 아침에 하우스에 물과 액비를 주고 들어와 “바람이나 쐬러 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옥수수 밭으로 바람쐬러 가자”고 한다. 밭에 풀이 가득하다. 그래서 하루종일 밭 주변에서 풀을 뽑으며 바람을 쐬었다^^...

일하다 잠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면소재지에 나가는 길, 멀쩡한 보도블록을 까 뒤집고 있다. 내년에 지방자치 선거가 있어서인지 요즘 장수군은 전체가 무슨 건설 현장 같다. 어지간한 산길은 다 포장이 되고, 수십 년 간 별 일 없던 냇가 주변도 다 뒤집어서 새로 정비를 한다.

마을 밖에 빌린 노지밭이다. 시골 사람들은 인사와 풀로 사람을 판단한다. 얼마나 인사를 잘 하느냐, 얼마나 밭의 풀 관리를 잘하느냐가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는 징표다. 400평 정도의 이 밭을 밭 모퉁이에 있는 무덤 한 기 제초 관리하는 것과 도지로 쌀 반 가마니 내는 조건으로 빌렸는데, 땅 주인이 강조하는 주요 요지는 이 밭에 풀이 안 나게 해달라는 것이다. 잘 관리해서 땅을 놀리지 않고 미관상도 좋게 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밭 주변에 풀이 잔뜩 나서 낫으로 일일이 풀을 베었다.

한참 풀을 베고 있는데 시골 어르신 부부가 지나가다가 “아니 왜 제초제를 치지 이렇게 고생을 하남?”하고 물어본다. “저희는 친환경으로 해서 제초제를 안 치거든요.” 했더니 “아이고 힘들겠구만, 고생하쇼.”하고 지나간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 부부의 뒷 모습이 보기 좋다. 풀을 다 베니 시원한 마음이 든다.

농진청 ‘기능분리 추진’ 논란 - 농업계 “공익성 외면 … 돈 되는 연구만 치중” 우려(농민신문 6월12일자)

점심 먹으로 집에 와서 농민신문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또다시 정부에서 농진청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주요 요지는 정부에서 농업선진화위원회라는 곳을 통해 졸속으로 협의를 해서는 농촌진흥청의 연구 기능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엔 몰랐는데 농촌에 와보니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은 농촌에 큰 도움을 주는 곳이다.

농진청 연구 결과를 토대로 농사를 지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실제로 우리가 내리 실패하던 참외 농사도 농진청에서 알려준 재배 방법으로 성공했다. 농촌 죽이기를 일삼는 지금 정부가 대통령 인수위 때부터 농진청을 해체하려고 노력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시 농민들의 반대로 그냥 넘어가더니 기어이 또 끄집어 낸 모양이다. 국민들 생활 곳곳을 민영화해서 재벌 돈 벌게 해주는 데만 정신 없는 그들이 이제 농촌 구석까지 침범해 들어온다. 미칠 노릇이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돈 벌이 외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미국, 중국, 일본에서도 농업 연구 기관의 민영화를 추진하다 그만두었다고 한다. 농업의 공공성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점심 먹고 다시 밭에 와 보니 옆의 사과밭 형님이 낫으로 풀 베는 우리 옆에서 승용 제초기로 풀을 베고 계신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루 4만원에 빌려 오셨다고 자랑이 대단하시다.

하루종일 풀을 뽑다보니 손목이 저리고 온몸이 쑤신다. 해질 무렵 집에 올라오니 윗집 용민이네 할머니가 집 앞 화단에 예쁜 꽃이 피었으니 구경을 오라고 부르신다. 얼마 전에 넷째 아들 현민이를 낳은 용민 엄마가 서울서 산후조리 끝내고 아기와 함께 내려오는 중이란다. 현민이가 클 때쯤 우리 농촌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