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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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 453

녹차의 삼단 변신

낮에 손님이 찾아와 녹차를 대접했습니다. 재작년 이웃이 일본 농업 연수를 다녀오면서 사다준 유기농 녹차인데, 아껴가며 마셨더니 아직도 봉지에 반절이나 남아 있는 것을 오랜만에 덜어내 우렸지요. 손님이 가고 난 뒤 거름망에 남아있는 찻잎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찻물을 한 번 더 우려내 저녁 세수를 해보았습니다. 비누를 쓰지 않았는데도 뽀송뽀송한 것이 개운하고,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당기지 않는 것이 참 좋더군요. 아, 이래서 사람들이 녹차 녹차 하는구나 알겠더라고요. 이젠 설거지 해야지 하고 거름망을 개수대에 넣으려는데, 파릇파릇 싱싱하게 불어난 찻잎을 버리기가 여전히 아깝습니다. 예전에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언니에게 놀러가서 가끔씩 얻어먹던 녹차김밥이 생각나 녹찻잎으로 ..

잠깐 방심으로 하우스 망가뜨리다

올해도 2월 말 하우스 감자를 심는 것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했다. 점적 호스 등 하우스 이곳저곳을 정리하고 퇴비를 듬뿍 넣은 뒤 트랙터를 끌고 들어가 밭을 갈았다. 이제 올해로 5년차에 접어든 만큼, 트랙터 운전은 자신이 있었다. 적응하던 첫 해 이후엔 거의 실수를 한 적이 없기에 약간 속도까지 내면서 자신만만하게 하우스 안으로 트랙터를 몰고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사! 욕심내어 하우스 가장자리에 너무 바짝 붙여서 로타리질을 하다가 그만 트랙터가 하우스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에 끼어버린 것이다. 앞으로 가면 앞쪽 파이프가 찌그러지고, 뒤로 가면 뒤쪽 파이프가 상하고... 온몸에 땀이 쫙쫙 흐르고, 트랙터는 점점 땅속 깊숙이 박혀 들어간다. 결국 하우스 파이프 여섯 개가 완전히 찌그러졌다. 겨우겨우 빠져 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집’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올해도 역시 눈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하염없이 펑펑 잘도 내린다. 몇 년 째 겨울 내 동파 방지를 위해 보일러와 배수관에 물을 빼고 다시 봄에 넣는 일을 반복해서인지, 2박3일 걸리던 일이 단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일이 너무 쉽게 끝나 스스로 어안이 벙벙할 정도. 보일러를 다시 돌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나니 이렇게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다. 작년 여름에 5톤 트럭 한 차 분량을 사서 열심히 잘라 놓은 참나무 장작 덕분에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맹추위도 전혀 두렵지가 않다. 먹을 양식이 없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작년 가을에 심었다가 잘 안 자라서 그냥 두고 갔던 시금치들이 겨울 추위를 견디고 부쩍 자라있다. 몇 포기 뽑아서 먹으니..

다음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사했습니다

3년 간 둥지를 틀었던 다음 블로그(http://blog.daum.net/manrak)에서 티스토리(http://naturefarm.tistory.com)로 이사했습니다.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 이사한 것이지만 실제만큼 어려운 일이더군요. 오랫동안 시골 생활을 하다보니 인터넷 활용법도 잊어버리고, 새로운 운용 틀에도 익숙지 않아서 며칠을 고생고생 한 끝에 티스토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2009년 3월5일 이전 날짜로 올려진 글들은 모두 다음 블로그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다음에서 티스토리로 이사한 이유는 운용 틀이나 방식이 티스토리 불로그가 훨씬 더 열려 있어서입니다. 또 더 많은 분들과 농사 이야기와 시골 살이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이기도 하구요. 올해는 농..

내년엔 시베리아로!

정기휴가를 끝내고 무사히 백화골로 다시 돌아왔어요. 이번에 여행한 곳은 터키, 불가리아, 그리고 제주도였답니다. 무섭게 뛴 환율 덕에 하루 세 끼 빵만 뜯어 먹으며 다녔지만, 여러 가지 보고 느낀 점 많은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작년, 재작년엔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했기 때문에, 매서운 늦겨울 추위가 남아있는 장수로 갑자기 돌아왔을 땐 정말 오돌오돌 떨며 고생했었지요. 올해는? 터키의 겨울은 거의 한국 겨울만큼 춥습니다. 불가리아는 영하 20도는 되어야 “아, 오늘은 좀 춥네” 할 정도지요. 제주는 기온 자체는 높았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엄청난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한없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올해는 추위 적응하느라 고생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아예 내년엔 시베리아에 다녀올까 봐요.

겨울, 정기 휴가 들어갑니다 (2008.11.04)

오늘 아침, 첫 된서리가 내렸습니다. 9시 훨씬 넘어서까지 하얗게 꽁꽁 얼어붙은 차 앞유리가 녹을 줄 모르더군요. 백화골에선 막바지 밭정리와 함께 올 겨울 떠날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길고 긴 겨울 휴가. 한국 농부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면 특권인 셈입니다. (동남아시아 농부들은 1년에 3모작, 4모작씩 하더군요. 부럽다기보다는 '어떻게... 1년 내내 한 철도 못 쉬고... 저 힘든 농사일을 계속... 쯧쯧...' 하는 게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농사일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고, 농사꾼인 게 자랑스러운 만큼 여행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희는 올 겨울에도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터키, 불가리아...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돈 많냐구요? ..

쌀 직불금 사태를 보며 옛 일을 떠올리다 (2008.10.16)

3년 전쯤인가.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주변 땅들을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몇 다리 건너 하우스를 임대해준다는 소개를 받고 주인을 만나러 갔다. 무슨 갈비집에서 주인과 만났는데, 낮부터 친구들과 한가로이 갈비를 뜯고 있는 모습하며 양복을 빼 입은 게 농민은 아닌 듯 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땅 빌리는 얘기가 본론으로 접어들자 척 하니 계약서부터 꺼낸다. A4 용지 서너 장에 걸쳐 컴퓨터로 뽑은 것이 한 두 번 해본 일이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계약서 조건이 열이면 열 다 지주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논농업직불금은 땅 주인이 받는다'는 항목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가 빌리기로 한 곳은 하우스, 그럼 당연히 밭일텐데, 논농업직불금은 또 뭐야..

가뭄에 고구마 캐다 (2008.10.14)

언제부터 비가 안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오는 날씨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릴 정도로 매일 해가 쨍쨍 뜬다. 가랑비가 잠시 내리다가도 금세 그친다. 다음날 오후부터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다시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이 지역에선 서리가 일찍 내린다. 10월 중순부터는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추위에 약한 고구마나 야콘 같은 식물은 서리를 맞으면 장기 저장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리 내리기 전에 반드시 캐야 한다. 요즘 1주일 넘게 고구마를 캐고 있다. 땅이 쩍쩍 갈라져 있다. 고구마 순도 말라 비틀어버릴 지경. 이 메마른 땅을 힘겹게 헤집으며 고구마를 캔다. 일손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해 봐도, 지금은 ‘단풍놀이철’이라 농촌에 와서 일 도와줄 사람을 찾기 힘들다. 땅이 마르면 고구마는 점점 더 ..

몽실이와 초롱이 (2008.10.06)

오늘은 우리 동네 개 이야기. 1년을 하루같이 전봇대에 묶여 지내는 외로운 초롱이(아랫집에서 키우는 개). 동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힘겹게 도랑을 건너와 꼬리를 흔드는 게 사교활동(?)의 전부이던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뉴 페이스! 윗집에서 최근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 몽실이. 처음엔 약간의 탐색전... 사이즈의 불일치에서 오는 어색함은 금세 극복하고 즐겁게 장난을 치는 초롱이와 몽실이. 목도 긁어주고... 같은 표정 짓기 놀이도 해보고... 급기야 정다운 포옹까지! 우리, 우정일까 사랑일까? (참고로 초롱이는 수놈, 몽실이는 암놈임)

오늘의 하늘 (2008.09.26)

갑자기 추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상추를 따는데 손끝이 시리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에 적응하느라 몸이 움츠러든다. 내일은 서리가 내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진짜 서리라도 내리면 큰일이다. 서리 오기 전 수확해야 하는 작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오후엔 잔가지를 모아 장작보일러에 불을 넣었다. 하루종일 덜덜 떨었지만 오늘, 하늘만은 정말 기념할 만했다. 일하다 허리 펴고 하늘 한 번 보고, 탄성 한 번 지르고... 이것이 바로 한국의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