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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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가을 걷이 끝내고 첫 서리 맞다! (2007.10.22)

백화골 2009. 3. 4. 11:46

고구마와 야콘, 들깨, 땅콩 농사를 마무리했다. 둘이서 수확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는데, 주말마다 손님들이 와서 일손을 덜어준 덕택에 지치지 않고 가을걷이를 쉽게 끝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해본 고구마와 들깨, 땅콩 농사는 비교적 잘 되었고 처음 해본 야콘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농사가 잘 되어서 동네 노인분들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었다.

작년엔 들깨를 제대로 못 말려가서 방앗간 아주머니에게 혼이 났는데, 올해엔 잘 말려가서 기분 좋게 기름을 짰다.

올해 우리 땅콩 별명은 ‘금땅콩’이다. 가족회원들에게 땅콩을 볶아서 보내려고 장수군 여기저기를 뒤져봤다. 방앗간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땅콩을 볶아주는 곳이 없다. 농사짓는 형님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단다. 그러다 어떤 할머니에게 튀밥집(뻥튀기 튀기는 집)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장날을 기다렸다. 튀밥집에 가보니 아주머니가 땅콩은 한번도 안 해봤단다. 그래도 뻥튀기 기계에 넣으면 땅콩이 껍질 채 잘 볶아질 것 같다는 말에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하고 묻는데 대답은 안 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일단 가져와 보란다.

컨테이너 상자 하나 반 정도니 비싸야 2~3만원 하겠지 생각하고 맡겼다. 땅콩이 볶아지는 동안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한다. “땅콩을 다 키웠네.” “아이고 잘 여물었네” 그러면서 볶아지는 족족 맛 좀 보자며 한 움큼씩 집어간다.

처음엔 그냥 웃으며 보고 있었으나 이 사람 저 사람 집어가다 보니 벌써 몇 됫박은 축난 것 같다. 속은 점점 타 들어가고... 드디어 땅콩이 다 볶아졌다. 얼마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5만원이란다! 게다가 땅콩이 예쁘게 볶아진 것도 아니고 검게 그을린 것이 더 많다.

무뚝뚝한 분위기에 눌려 가격을 처음에 정확히 안 물어보고 맡긴 우리도 잘못이지만, 이건 좀 심했다. 어이없어 하며 5만원을 내고 돌아서는데 좀 심했다 싶었던지 5천원을 건네준다. 속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게 다 땅콩 농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중국산 땅콩에 밀려 가격 경쟁이 안 되니 여주 같은 일부 지역 빼곤 밀처럼 국산 땅콩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장터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요즘도 땅콩농사 짓는 사람이 있냐며 신기해하고 대견해 했던 거다.

땅콩 농사짓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땅콩 볶아주는 기계들도 사라져 버린 거고. 농촌이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시스템이 붕괴되어 버리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볶은 땅콩이 구수하고 맛있어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어제는 제대로 서리가 내렸다. 영하 2.5도까지 기온이 내려갔다고 한다. 11월도 안 됐는데 벌써 고랭지 장수에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농촌에 내려와 보니 겨울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도시에서 살 땐 당연하게 생각했던 도시가스가 사실은 얼마나 큰 혜택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시골에선 난방을 위해 기름을 때거나, 나무를 때거나, 전기 보일러를 돌리거나 하는데 다들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름이나 전기는 난방비 및 설치비가 엄청나고, 나무는 시간과 노력이 무척 많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활비를 절약하자는 취지로 화목 보일러만(보통 화목과 기름 보일러를 겸용으로 사용한다) 설치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루하루 나무 구하느라 정신 없다. 해발 500m가 넘는 데다가 산 속에 있는 집이라 해만 설핏 넘어가면 바로 한겨울이 된다. 이것저것 잡다한 농사 뒷정리까지 다 끝내고 나면 한동안은 나뭇꾼 노릇 하느라 바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