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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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7년~2022년

봄 농사, 조금 느린 걸음으로 아주심기 시작

백화골 2021. 3. 22. 12:33

봄을 품고 있는 산과 들이 꿈틀대며 새로운 기운을 쏟아냅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산골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춥지만 한낮이 되면 제법 따뜻한 날씨가 돼서 일하기 좋습니다. 이제 귀농 17년차로 접어드는 백화골 농부들에게는 봄기운 맞으며 다시 맞는 이 봄이 또 설레고 감사합니다.

 

 

2021년 농사를 시작하며 좀 더 차분하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헐레벌떡 서두르며 농사 짓다보면 놓치는 것도 많고 순간순간 중요한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기도 쉬워서 조금 느린 걸음으로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물을 심거나 옮길 때도 닥쳐서 하기보다는 미리미리 준비하니 마음도 편하고 진도도 잘 나갑니다.

 

벨기에에서 온 봉사자 샤와 함께 감자 심을 밭을 만들었습니다. 이 엄혹한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에서도 한국을 여행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세 번의 코로나 검사와 14일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백화골에 온 친구입니다. 한국인 봉사자도 많이 안 오는데 먼 곳에서 찾아와 농사일을 도와주니 참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

 

 

백화골은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저런 농사 정보를 공유하고 전달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요. 20대 중반에 벌써부터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준비하는 민철님이 찾아와 1주일을 함께 일했습니다. 저희는 땅심을 살리기 위해 큰 기계는 사용하지 않고 작은 관리기로 밭을 갈고 두둑을 만듭니다. 작은 기계라서 사람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민철님이 실습 삼아 관리기질에 도전했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다양한 농사일을 체험하고자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보기 좋습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 봄배추, 콜라비를 비닐하우스에 아주심기 했습니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각종 벌레와 병들이 새롭게 출현하고 있습니다. 유기농사에서는 최근 들어 땅 속에 알을 낳는 거세미 나방 피해가 특히 심각합니다. 원래 이맘 때 작물을 심으면 추워서 큰 피해가 없었는데,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모종을 옮겨심기 전에 거세미나방 피해를 줄이는 유기농자재인 제충국 꽃가루를 뿌려주었습니다. 제충국은 국화과 꽃인데,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서 유기농자재로 널리 사용하고 있으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훨씬 벌레 피해를 줄여줍니다.

 

 

이맘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심어야 하는 완두콩도 파종했습니다. 한 구멍에 세알씩 넣고 흙을 덮어주는데 벌써부터 하얀 완두콩 꽃망울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레입니다.

 

 

몇 년 전에 백화골에 봉사자로 찾아왔었던 은희님이 다시 농사일을 도우러 왔습니다. 농업을 전공하고 저개발국가에 농업 지원을 해주는 일을 하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고 하네요. 얼마 전까지 세네갈에서 일했는데 아프리카 쪽은 의료 상황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코로나 상황이 잘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고 합니다. 농업 기반 시설도 취약하다고 하고요. 농업 전공자여서 그런지 농사일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고 어떤 일이든 눈썰미가 좋아 금방 파악합니다. 애호박과 오이 심을 곳 두둑을 만들고 유인망을 튼튼하게 설치했습니다.

 

 

백화골에 농사 봉사자로 오는 친구들은 세계여행자네트워크를 통해 오는 여행자들이기 때문에, 농사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쉬는 날에는 주변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백화골 주변은 경주, 부산, 동남해안 등 귀한 여행지가 많은 지역입니다. 일 끝나고 황룡사지와 월정교, 첨성대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오래된 유적지가 품고 있는 역사의 기운이 큰 힘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