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좋은 10월입니다. 깜짝 추위가 지나가자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고 쾌청한 10월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날씨 좋을 때 한 가지라도 더 일하고 거두느라 분주한 나날입니다.
10월 들어 첫 비가 내렸습니다. 몇 주 동안 목이 말랐을 노지 배추, 무 같은 작물들을 위해선 비가 오는 게 좋지만 오늘은 농산물 발송하는 날. 오랜만에 비오는 날 일하려 하니 마음보다 먼저 몸이 찬비 맞기 싫다고 움츠러드네요. 일이 더딥니다. 오후에 비가 그친다고 하여 노지 작물 수확을 미뤄놓았지만 얌전하게 내리는 가을비가 오후까지 이어집니다. 할 수 없이 비 맞으며 밭을 오가며 수확하고 포장하니 어느덧 하루가 지나가네요.
코스모스가 비를 맞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하네요. 가을 풍경은 어디를 둘러봐도 감탄의 연속입니다
무 농사가 제법 잘 됐습니다. 무는 8월 중순에 심는데, 이 때 심한 가뭄이거나 폭우가 쏟아져내리거나 하면 발아가 잘 안 됩니다. 올해는 이 시기에 비가 알맞게 내린 데다가 예년에 비해 신경을 많이 썼더니 발아도 잘 되고 갈라져서 자라는 놈들도 거의 없이 잘 자랐습니다. 무가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져 자라거나 모양이 좋지 않게 자라는 것은 꼭 필요한 미량용소인 붕사가 부족해서라고 합니다. 붕사도 농사에 꼭 필요한 기본 유기농 자재입니다. 붕사를 바닷물, 계란껍질 칼슘 등과 함께 여러번 쳐 주었더니 모양이 좋고 맛도 괜찮아졌네요. 무는 다음 주에도 무청과 함께 한번 더 발송할 예정입니다.
고구마 수확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안 와서 캐기가 힘들 것 같았는데, 물빠짐이 좋은 땅에 고구마를 심어서인지 비교적 쉽게 캤습니다. 올 봄 저온현상 때 순이 죽어버린 놈들이 많아 수확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추위를 견디고 활착해 자란 놈들은 고맙게도 튼실하고 매끈하게 잘 자라주었네요. 캔 고구마들은 모종 키우던 하우스 안에다 골고루 펼쳐놓고 잘 말리고 있는 중입니다. 고구마는 이렇게 며칠 잘 말려야 당도가 생기면서 한결 더 맛있어집니다.
이번 주엔 오랜만에 표고버섯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거래하는 표고버섯 농가에 몇 번이나 부탁했었는데, 매번 “요즘 물량이 별로 없어서...”하는 대답을 듣곤 했답니다. 올해 유독 버섯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몇 번이나 표고버섯 형님을 조르고 조르다가 이번 주에야 공급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것이라 그런지 들기름에 달달 볶은 버섯 반찬이 유난히 맛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집회를 하지만, 농민 집회처럼 관심 못 받는 집회도 드문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한미 FTA 국회 비준 반대를 위한 농민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렸습니다. 저희도 당장 큰 피해를 받게 될 농민의 한사람이라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농민들이 여의도에 몰려들었지만 나중에 집에 와서 살펴보니 언론 매체에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네요. 미국 뉴욕의 집회 소식은 매일 크게 전하면서 같은 나라 사는 농민들의 외침에는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네요. 매일 한 끼도 안 빼놓고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지 조금 서운한 맘이 듭니다.
이사할 집 짓는 일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전봇대를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기존 전봇대에서 거리가 멀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데, 다행히 저희 집터 근처 멀지 않은 곳에 전봇대가 있어서 큰 비용 없이 새 전봇대를 세웠습니다.
밭 평탄 작업이 끝났습니다. 여러 개의 다랑이 논을 하나의 밭으로 만들었습니다. 포크레인 작업은 일정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마련인데, 작업을 해준 친구가 며칠동안 정말 열심히 해주어서 생각보다 빨리 작업이 끝났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다른 데 가서 저렇게 일하면 미친놈 소리 듣지!” 할 정도로 정말 쉬지도 않고 하루종일 일해주었습니다.
친구 말이 “집 짓는 데 다른 도움은 못 줘도 이렇게라도 돕고 싶어서”라네요.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제 돌 고르고 볏짚과 왕겨 같은 땅에 좋은 유기물들을 넣어주며 땅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쳐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농부의 하루 > 201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 (14) | 2011.11.09 |
---|---|
잠못 이루는 가을밤 (22) | 2011.10.19 |
때 이른 서리, 배추 강낭콩 수확 (6) | 2011.10.05 |
8월에서 10월로 (2) | 2011.09.25 |
추석 방학 끝 (8) | 201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