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 달빛과 별빛밖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골의 밤.
밤이 깊어갈수록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는 조용한 세상.
그런데 과연 시골의 밤이 조용할까요?백화골에서 계절을 몇 번 지내고 난 지금의 대답은 당연히 ‘NO’랍니다.
만약 달력이 없다고 해도 밤에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화골의 밤은 철에 따라 달라지는 온갖 소리로 꽉 차곤 합니다.
겨울은 조용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세상은 죽은 듯이 조용하지요. 초봄까지 겨울의 침묵이 이어집니다.
밤의 침묵을 깨는 첫 주자는 소쩍새입니다. 봄 밤, 소쩍새 우는 소리는 사람 마음을 묘하게 싱숭생숭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소쩍새는 이름 그대로 ‘소쩍, 소쩍’ 하면서 울기 때문에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 수 있답니다.
소쩍새 다음엔 뻐꾸기가 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뻐꾸기는 ‘뻐꾹, 뻐꾹’ 하고 웁니다. 똑같은 봄 밤에 울어도 뻐꾸기 우는 소리는 소쩍새 같은 애처로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뻐꾸기는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쩍새와 뻐꾸기가 울고 간 뒤엔 개구리가 온통 난리법석을 부립니다.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 아, 이제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밤새도록 시끄럽게 떠드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마치 떠들썩한 축제 같은 분위기입니다. 가만 듣고 있다 보면, 정말로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한바탕 노래라도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소쩍새나 개구리나 모두 열심히 짝을 찾는 소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에요.
어느 순간, 개구리 울음소리는 풀벌레 우는 소리로 바뀝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밖은 ‘찌르르르, 귀뚤귀뚤, 스륵스륵...’ 하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 작은 벌레들이 어쩌면 저렇게 밤새도록 쉬지 않고 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입니다.
밤이 저렇게 풀벌레 소리로 덮여있으니 이제 가을입니다. 낮은 아직 푹푹 찌는 삼복 더위의 세상이지만, 아침저녁 부는 바람 속엔 가을 냄새가 섞여있습니다. 동장군이 오기 전까지는 풀벌레 세상이 계속 이어질 겁니다.
매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되는 밤의 소리들.
예전에 <침묵의 봄>이라는 책에서 인류가 이렇게 살충제 남용과 환경 파괴를 계속할 경우 봄이 되어도 새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땐 별 생각 없이 읽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지 몸에 와 닿습니다.
아직 이렇게 계절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주는 밤의 소리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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