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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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23년~2024년

노르웨이 농대생과 폭염에 유기농사, 바다여행, 한중일 대합창제

백화골 2024. 8. 23. 12:20

폭염이 조금씩 기세가 꺽이는 느낌입니다. 8월 초에 엄청나게 올라갔던 기온이 살짝 떨어졌어요. 올 여름은 너무 더워서 밭에서 일하기 참 어려웠어요.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한국이 좋아서 여행 온 봉사자 친구들 덕분이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힘들었을 텐데,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일해줘서 고마웠습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남기고 싶은 24년 백화골 여름 기록입니다.

 

퇴비를 넣고 두둑을 새로 만들며 가을 농사 준비가 한창입니다.

 

이번 여름은 예년보다 2도 정도 온도가 올라갔던 것 같아요. 일하며 체감하는 온도가 정말 기후위기가 심화되는구나 싶더라구요. 보통 7월 말에 심는 가을 양배추가 올해는 70% 정도가 죽었습니다. 살짝 오른 온도를 버텨내지 못하더라구요. 잘 자라던 노지 오이도 폭염이 계속되니 잘 못 자라고, 대부분의 작물이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마토와 가지는 온도가 올라가도 잘 자랐습니다. 토마토는 초기에 새로운 종류의 나방 피해가 있긴 했지만, 비닐하우스 전체에 망을 씌우고 수정벌을 넣은 후부터는 잘 자랐습니다. 폭염을 가득 품고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정말 맛있어서 하루하루 토마토 먹으며 버텼던 것 같아요. 가지도 열대 작물이라서 그런지 계속 잘 자라고 있습니다.

 

유기농장 여름 풍경은 대체로 작물만 풀반입니다. 풀 매기가 힘들어요 .

 

유기농부들이 하는 일 중에 반은 풀관리 같아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여기저기 자라는 풀을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유기농사를 꼭 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초제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군들이 숲과 사람들을 태워죽이던 용도로 사용하던 글리포세이트를 주성분으로 만들어진 맹독성 화학농약입니다. 원래 쇠를 녹이거나 청소하는 용도도 사용되던 것을 베트남전에 사용한 후 제초제로 만들었습니다.

 

제초제는 맹독성 화학농약이라 뿌리는 사람, 땅, 작물, 공기, 물 등 모든 것을 오염시킵니다. 제초제 때문에 실제로 많은 농민들이 죽어가구요. 제초제에 사람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일명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르토닌을 제거하여 마음의 병까지 생기게 한다네요.

 

 

가장 더울 때 함께 일해준 노르웨이 농대생 헬레네입니다. 올해는 유독 각국의 농대생들이 한국 유기농을 배우고자 많이 찾아옵니다. 겨울 왕국 노르웨이는 여름에도 별로 안 덥다는데, 처음 경험해보는 극한의 폭염을 헬레네가 잘 견뎌 주었습니다. 항상 얼굴이 빨개져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미소 짓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노르웨이는 추워서 농사를 많이 짓지는 않지만, 헬레네는 유기농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물가가 비싸서 1년에 세번 정도 밖에 외식을 안 한다고 하네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에서 외식도 많이 하고 여행을 즐겼습니다. 한국 여행하며 뭐가 제일 좋냐고 물었더니 한국음식이 정말 건강에도 좋고 맛있다고 하네요. 외식을 많이 안 해서인지 20대 초반임에도 요리를 잘 했습니다. 떠나는 날 많이 아쉽더라구요. 몇년 뒤 헬레네가 노르웨이에서 유기농사를 시작하면 우리가 봉사자로 가기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독일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20대를 보낸 킴입니다. 이름이 킴이어서 꼭 한국 사람 같아요.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그림을 배웠다고 해요. 애니메이션 그림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예요. 킴은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김치통 하나가 금세 사라졌네요. 눈썰미가 좋아서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 한 여름에 킴 덕분에 농사 진도가 팍팍 나갔습니다.

 

 

떠나기 전날 킴이 저희를 그림으로 그려주었습니다. 처음에 제 머리를 실물과 똑같이 대머리로 그려놔서 머리카락을 조금만 더 그려달라고 사정했더니, 몇 초만에 바로 젊은 얼굴로 바꿔주었습니다. 지금 한국 절에 가서 명상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인근 경주 교촌마을에서 공연이 있다고 해서 함께 찾아갔습니다. 이글루베이라는 밴드의 공연이었는데, 한 여름밤을 시원하게 해주는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밤 풍경이 아름다운 월정교 옆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즐겼습니다. 킴은 연주자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고, 우리는 열심히 공연을 즐겼습니다.

 

 

 

유럽 친구들이 습도 높은 한국의 여름을 견디는 게 기특해서 하루는 동해바다에 같이 갔습니다. 다들 수영을 참 잘하네요.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귀신고래 등대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정교한 미니어처 기차를 만드는 가업을 이어받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 미와님이 깜짝 방문을 했습니다. 평소 유기농사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 친구의 소개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한국이었고, 지금 어머니와 삼촌이 유기농사를 짓고 계씬데, 앞으로 자기도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유기농 면적이 0.25%로 굉장히 낮은 나라입니다. 한국은 거의 3% 가까이 되거든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가지 않는 현실, 유기농에 대한 적은 관심,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기농사를 꼭 지어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은 참 가까운 나라인데, 앞으로 더 많은 일본 사람들과 교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한중일 대합창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경주시립합창단, 중국쓰촨대학교 명원합창단, 일본의 어머니코러스 합창단, 마산여성합창단, 한국의 조아콰이어 합창단 등이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경주예술의전당 공연은 대체로 객석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유료 공연임에도 많은 관객들이 오셨더라구요. 동북아 3개국의 합창단이 서로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는 시간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제 조아콰이어 합창단이 ‘나 하나 꽃 피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참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황무지를 꽃밭으로 채워나가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이제 유기농이라는 꽃을 피워서 더 깨끗한 환경,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여름 가고, 가을 시작입니다.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나 하나 물들어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말하지 말아라

내가 꽃을 피우고 너도 꽃피우면

결국 풀밭이 결국 풀밭이

온 세상 풀밭이

꽃밭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물들어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말하지 말아라

내가 꽃 피고 너도 꽃 피면

온 세상 꽃밭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 / 윤학준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