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시작되면서 며칠 날씨가 확 풀렸습니다. 따뜻한 5월 날씨 같아서 저희는 신나게 밭일하면서 냉해에 강한 배추, 브로콜리, 양배추 등을 싹 노지밭에 심었습니다. 지난 5년간 장수 날씨를 통계 내보니 4월 5일 이후로는 영하로 거의 떨어지지 않았더군요. 나름 통계수치까지 참고하며 제때 잘해가고 있다고 자부하며 밭일을 해나갔습니다. 하지만 4월6일 비가 하루종일 쏟아지더니 갑자기 한파가 찾아오고 세상은 눈으로 하얗게 덮었습니다.
너무도 따뜻하고 햇볕 좋은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오랜만에 이불도 널고, 이것저것 모종도 넣고 따뜻한 봄기운을 맡으면 농사일을 이어갔습니다.
옆 마을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수용이네가 품앗이로 비닐멀칭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비탈진 밭이라 골 타고 비닐 씌우는 일이 둘이서 하기엔 힘들었는데, 넷이서 하니 힘이 몇 배로 납니다. 900평 가까이 되는 밭이라 하루에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이 주는 따뜻한 힘은 참 강한 것 같아요.
토요일에 비가 내렸습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촉촉이 비가 내리더군요. 혹시라도 폭우로 변해 이제 막 로터리 친 밭 흙이 떠내려 갈까봐 살짝 떨었지만 다행히 큰 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조용 단비가 내렸습니다. 마침 손님들이 놀러온 터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 푹 쉬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나가보니 밤새 눈이 내렸네요. 난감해서 작물 심은 밭에 올라가보니 눈이 많이 내리진 않아서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 4월에 눈 한 번 오지 않으면 장수 날씨가 아니지, 하고 나름 여유를 부려보았지만, 이런저런 걱정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어제 저녁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는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하우스 작물들은 잘 자라고 있고, 노지에도 냉해에 강한 놈들을 심은 것이라 방심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영하 4도까지 온도가 내려갔네요. 하우스에 심은 감자가 냉해를 입었고, 노지 작물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방씩 얻어맞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작물을 심어서 회원들에게 일찍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일을 빨리빨리 진행했는데, 역시 농사라는 게 농부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은 아니네요. 냉해를 입은 작물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제 밤에 왜 보다 철저하게 방비하지 않았나 후회가 됩니다. 땅 앞에서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농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역시 겸손과 때에 맞는 부지런함인 것 같습니다.
4월 기온 치고는 온도가 심하게 내려가기는 했지만, 보온이 잘 되는 모종 하우스에서는 모종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컬리플라워, 상추, 민들레, 로메인, 케일, 호박, 오이, 고추, 피망, 양상추.... 예년보다 심는 작물이 많아진 까닭에 모종 하우스가 꽉 차서 터질 지경입니다. 이 모종들은 서두르지 말고 잘 키워서 밭으로 옮겨 심어줘야겠습니다.
한번 방심으로 작물들이 냉해를 입기는 했지만 더 겸손하게, 더 부지런하게 농사지으라는 경고장 하나 받은 셈 치렵니다. 오늘은 냉해 입은 작물들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혀 하루종일 우왕좌왕하기만 했는데, 내일부터는 맘 다잡고 다시 열심히 일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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