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에 진딧물이 쫙 깔렸어요. 이거 다 뽑아버려야 되나요?”
“주말 농장을 하는데요, 유기농으로 방제는 어떻게 하나요?”
10년 가까이 유기농 농사를 짓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손바닥 만한 텃밭 농사를 짓더라도 온갖 벌레들이 다 달려들기 마련이지요. 오늘은 도시 텃밭이나 주말 농장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자 하는 초보 농부님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한 번 죽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기농 농사란 화학합성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없이 짓는 농사를 말합니다. 유기질 퇴비와 땅속 미생물로 땅심을 키워서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튼튼하게 키우려 해도 벌레들이 달려들어 총공격을 시작하면 속수무책입니다. 진딧물로 뒤덮인 고추나 구멍이 뚫리다 못해 나중엔 망사처럼 너덜거리는 배추도 괜찮으신 분이라면 별다른 방제법이 필요 없겠지만, 유기농으로 키우면서도 어떻게든 작물을 지키고 싶다면 그에 맞는 해결방법이 있답니다. 바로 유기농 자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지요. 유기농 자재는 자가제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에는 상품으로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답니다. 어떤 제품이 유기농 자재인지 알려면 농촌진흥청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되고요.
인터넷으로 '농촌진흥청>기술정보>농자재정보>유기농업자재'로 들어가면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규칙 별표 및 별지 서식 일부’ 파일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파일 내용을 보면 유기농에서 사용 가능한 자재가 어떤 것이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친환경유기농자재 공시 및 품질인증현황’ 파일을 다운받으세요. 이 파일에 유기농자재 제품 목록이 나옵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심사 후 유기농에 사용 가능한 자재들을 공시한 것입니다. 퇴비와 천적, 병해충에 사용하는 자재 등 다양한 제품들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는데, 일반 농자재점에 가보면 ‘친환경적 제품’, ‘청정 무공해’ 이런 식의 수식어가 달려 있는 농약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유기농 농사에 쓸 수 없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일반 농자재점에서 진짜 유기농 방제재를 파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인들도 유기농 농사법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모르시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제품이든 일단 위에서 말씀드린 농촌진흥청 파일로 들어가서 유기농 사용 가능 자재로 공시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파일 내용만 보면 어떤 병해충에 어떤 제품을 써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병충해에 사용하는 것인지 상세한 설명을 달아달라고 저희도 건의를 했었는데 개선이 안 되네요. 그래서 각각의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거나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는데, 이것도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식물보호닷컴(http://www.plantprotector.co.kr) 같은 유기농 자재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해놓은 사이트를 이용합니다. 각각의 회사에서 나오는 팜플릿을 한 자리에 모아놓아서 보기에 편합니다.
텃밭을 고를 때 - 주변에 농약 치는 밭이 없어야 합니다
우선 유기농으로 도시 텃밭을 농사짓기로 결심하셨다면 어떤 밭을 고르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변에 농약 치는 밭이 있다면 바람타고 농약이 날아오기 때문에 유기농사가 안 됩니다. 인삼밭, 사과밭, 배밭, 고추밭 등이 제일 농약을 많이 치는 밭입니다. 일반 분무기로 농약치는 밭이라면 4~5m만 떨어져 있어도 되지만, SS기나 경운기 등 고압으로 농약을 치는 밭이라면 100m는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밭을 만들 때 - 낙엽이나 볏짚 등 유기물을 넣어야 합니다
유기농 방제의 기본은 땅심 키우기입니다. 땅에 미생물이 살아 있고 배수가 잘 된다면 병도 잘 안 오고 벌레도 들끓지 않습니다. 밭을 만들 때 낙엽이나 볏짚, 왕겨 등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깨끗한 유기물들을 듬뿍 듬뿍 땅에 넣고 삽으로 땅을 뒤집어 주세요. 무언가 작물을 심을 때마다 유기물을 넣어주면 시간이 지날수록 땅심이 살아납니다.
작물을 고를 때 - 벌레가 많이 안 타는 작물을 심으세요
비교적 유기농으로 농사짓기 쉬운 작물들이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쉬운 작물부터 심어보세요. 상추, 감자, 고구마, 메주콩, 땅콩, 당근, 옥수수, 치커리, 토란, 완두콩, 가지, 쑥갓, 아욱, 들깨, 근대, 수수 등이 쉽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는 땅 속 벌레가 조금 구멍을 파놓을 수도 있지만 먹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유기농으로 어려운 작물은 고추, 토마토, 오이, 애호박, 양배추, 브로콜리, 배추 등입니다.
유기농 퇴비 - 부산물 퇴비와 유박 퇴비가 있습니다
유기농 퇴비는 부산물 퇴비와 유박 퇴비로 크게 나뉩니다. 부산물 퇴비는 소똥, 돼지똥 등을 발효시켜서 만든 퇴비를 말하고 유박 퇴비는 콩이나 들깨 등의 기름을 짜고 남은 찌거기를 말합니다. 유박퇴비가 부산물퇴비에 비해 효과가 빠르지만 장기적으로 땅심 키우는 데는 부산물퇴비가 좋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두 퇴비를 적당히 섞어서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유기농자재 목록 공시 목록에 인증 퇴비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회사에 연락해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구멍이 송송 뚫릴 때 - 각종 나방 애벌레 방제법
텃밭 농사를 짓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구멍을 송송 뚫어놓는 꾸물꾸물한 나방 애벌레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고추, 토마토, 가지, 애호박,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 겨자채 등에서 나타나며 심해지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작물로 만들어버립니다. 유기농에서는 주로 고삼뿌리로 만든 자재로 방제합니다. 고삼뿌리는 신경통에 좋다고 해서 달여서 먹기도 하는 한약재인데요, 무지무지 쓴 맛이 납니다.
고삼뿌리로 만든 자재를 사용한다고 농약처럼 한방에 다 죽는다든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벌레가 오기 전에 미리미리 방제를 시작해서 기피를 시킵니다. 날씨가 뜨거워질수록 피해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초기부터 유기농 자재 목록공시된 제품을 하나 구입해서 뿌려주면 방제가 쉽습니다.
진딧물 방제법 - 무당벌레를 놓아주세요
진딧물은 고추, 호박, 오이, 브로콜리, 수박, 참외 등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데, 많은 초보 농사꾼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주범 중의 하나이지요. 번지는 속도도 빠르고, 손으로 일일이 잡을 수도 없어 애가 타는 징글징글한 벌레입니다. 건조할 때나 땅 상태가 안 좋을 때 더 많이 발생하는데, 가장 좋은 유기농 방제법은 무당벌레입니다. 막 진딧물이 생기기 전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쑥이나 개망초 등 잡초 덤불을 살펴보면 무당벌레가 보입니다. 이것을 모아서 작물 잎사귀에 놓아주면 됩니다. 어른 무당벌레도 좋지만, 아직 날지 못하는 무당벌레 유충이 더욱 좋습니다. 무당벌레 유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신다면 위 사진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해충처럼 생겼기 때문에 이 귀중한 벌레를 잘 모르고 마구 잡아 죽이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무당벌레 종류는 세계적으로 5천 가지가 있다는데, 점이 일곱 개 있는 칠성 무당벌레가 진딧물에 제일 좋고, 28점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먹는 게 아니라 잎을 갉아먹는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해충입니다. 가지나 감자 밭에 주로 많은 28점 무당벌레는 보이는 대로 죽여야 합니다. 28점 무당벌레 이외의 무당벌레는 대부분 다 진딧물을 잡아먹기 때문에 진딧물이 발생하면 무당벌레를 잔뜩 잡아다 놓아주면 됩니다. 한 마리의 무당벌레가 보통 하루에 500마리의 진딧물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무당벌레를 활용하는 방법을 천적 농법이라고 합니다.
무당벌레를 잡아 놓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주로 제충국이라는 식물을 원료로 만든 유기농 자재를 사용하면 됩니다. 역시 미리미리 뿌려주는 것이 방제가 쉽습니다. 진딧물이 이미 새까맣게 뒤덮인 지경에 이르렀다면 유기농 자재로 방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배추에 구멍이 송송 - 벼룩잎벌레 방제법
텃밭에서 빠지지 않는 작물이 배추인데요, 초창기부터 징글징글하게 달라붙는 벼룩잎벌레, 일명 ‘톡톡이’ 때문에 망사 배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톡톡 튀어다니며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이놈들은 가장 골치 아픈 해충인데요, 특히 봄철에 가장 극성을 부립니다.
톡톡이는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자라기 때문에 제일 좋은 방제법은 땅속에 천적을 미리 넣어주어서 톡톡이를 잡아먹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적 가격이 무지 비싸서 저희도 한번 사용해보고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유기농에서는 토양살충제를 못 치기 때문에 밭을 만들 때 패화석 같은 석회 성분이 들어 있는 유기농 자재를 땅에 넉넉히 뿌려주면 톡톡이 개체수가 조금 줄어듭니다.
최근에는 톡톡이에 잘 듣는 유기농 제품이 많이 나와 있는데요, 진딧물처럼 제충국으로 만든 자재가 활용됩니다. 배추를 정식하고 활착하자마자, 톡톡이가 발생하기 전에 뿌려주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발생 후에는 농약처럼 완전히 방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추가 죽어갈 때 - 탄저병 예방법
고추는 유기농이 안 된다고 일반 농민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기농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냥 고추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뿐입니다. 고추를 유기농으로 키우면서 제일 어려운 방제는 탄저병입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반드시 탄저병이 와서 고추가 시름시름 앓다가 심해지면 죽습니다. 탄저병은 일단 땅을 만들 때 패화석 같은 석회 자재를 충분히 뿌려주어 병균을 예방하고 두둑을 높게 만들어서 물빠짐을 좋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유기농자재로는 석회 보르도액이 있는데요, 2~3주 간격으로 장마 전부터 뿌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방제를 했는데도 탄저병이 오면 그냥 맘 편히 갖고 포기하는 게 또 유기농사이기도 합니다. ^^
끝없이 올라오는 잡초 - 부직포나 유기물로 잡으세요
아주 작은 평수의 텃밭이라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잡초가 올라옵니다. 매일 밭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만 농사짓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시기를 놓치면 금세 풀밭이 됩니다. 일반 관행농에서는 제초제로 풀을 잡는데 맹독성 농약입니다. 보통 농촌 어르신들이 “난 농약 하나도 안 쳤어, 그냥 풀약만 조금 했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이 풀약이 제초제로 농약 중에서도 가장 독한 농약입니다. 뿌리작물에는 아주 오랫동안 잔류가 된다고 합니다. 텃밭 농사를 유기농으로 지으신다면 제초제도 절대 뿌려서는 안 됩니다.
작물 바로 옆에 나는 풀은 직접 뽑아야 하지만, 골과 골 사이에 나는 풀은 부직포를 대거나, 유기물을 두껍게 깔아주면 됩니다. 검색창에서 ‘농사용 부직포’로 검색하면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직포는 농자재상에서 파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냥 헌 이불 등으로 대체해도 됩니다. 헝겊을 대주는 것인데 땅도 숨을 쉬면서 잡초도 제거되어 좋습니다. 부직포 보다 더 좋은 방법은 낙엽이나 볏짚, 왕겨 등을 아주 두껍게 깔아주는 겁니다. 얇게 깔면 풀들이 이기고 나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부숙되어 다음해 농사에도 좋습니다.
자가 제조 가능한 유기농 자재
계란 껍질 칼슘 : 주로 계란 껍질을 현미식초에 녹여서 사용합니다. 작물을 튼튼하게 자라게 하고 잎을 두껍게 하여 병충해를 방제합니다. 현미식초에 계란껍질을 넣으면 3, 4일 후에 용해되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식초 뚜껑을 닫아 놓으면 용기가 팽창해서 터집니다. 뚜껑을 살짝 열어 놓으세요. 토마토의 경우 500배 정도 정식 후 1주일 간격으로 대여섯 번 뿌려주면 배꼽썩음병 발생률이 줄어듭니다.
천연 인산 칼슘 : 돼지뼈나 소뼈를 곱게 갈아서 현미식초에 용해하여 사용합니다. 계란칼슘과 마찬가지로 작물을 힘있게 자라게 합니다. 작물의 당도를 높이는 작용도 합니다.
깻묵액비 : 깻묵과 쌀겨를 2:1 비율로 섞은 후 물만 부어놓으면 3~6개월 정도 후에 완성됩니다. 토마토나 기타 작물에 액비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500배 정도로 엽면시비하면 작물이 빛깔이 좋아지고 성장세도 빨라집니다. 깻묵과 쌀겨를 구하기 어려울 때는 유박퇴비를 스타킹 같은데 넣고 물을 부어 놓으면 비슷한 액비가 됩니다.
사실 유기농 방제라는 게 지역이나 기후, 밭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거다, 저거다 라고 단정해 말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유기농 방제법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이 계시면 댓글로 질문 남겨주세요. 저희가 아는 만큼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농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입니다. 올봄 새롭게 농사를 시작하는 모든 도시 텃밭 농부님들, 올 한해 농사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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