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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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5년~2006년

농부의 꽃말 (2006.08.15)

백화골 2009. 3. 4. 10:20

가지꽃 

"가지꽃도 종종 허사가 있답니다"

가지꽃에 대한 오래된 농사 속담이 있다. '가지꽃과 부모 말은 허사가 없다'. 가지꽃이 그만큼 결실율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 가지를 키워보면 꽃이 핀다고 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착과율이 한 80% 정도? 하지만 다른 놈들에 비해 쉽게 착과가 되는 편이라 텃밭에 몇 그루만 심어도 여름 내내 한가족이 실컷 먹고 남을 정도로 가지가 주렁주렁 열리는 건 사실이다. 보랏빛 꽃잎 속에 샛노란 수술을 단 가지꽃은 관상용으로 키워도 좋을 만큼 곱다.

오이꽃

"일곱 번째 마디 아래로 열린 꽃은 모두 따주세요"

오이는 병충해와 진딧물 방제도 신경 쓰이지만 곁순과 아랫마디 쪽 꽃 따주는 데도 잔손이 많이 간다. 오이 모종을 심고 첫 꽃이 열렸다면 얼른 따줘야 한다는 뜻이다. 보통 일곱 번째 마디 아래에 핀 꽃과 열매는 모두 따내야 한다.

옥수수꽃

"암꽃 수꽃 빨리 만나세요"

싸리 모양의 수술이 위로 힘차게 올라오면, 곧 겨드랑이 사이사이에서 암술이 고개를 내민다. 바람 한 번 불 때마다 수꽃에서 휘날리는 꽃가루가 어찌나 많은지 인공수정을 해주지 않아도 대부분 쉽게 착과가 된다. 이제 남은 것은 꾀 많은 다람쥐가 눈치 채지 않는 일 뿐. 올해 우리 옥수수는 잘 여문 놈만 골라 다람쥐가 쏙쏙 갉아먹은 탓에 반타작밖에 못했다.

토마토꽃

"정식 할 때 됐네, 물 줄 때 됐네"

토마토 농사를 지을 때 토마토꽃은 중요한 키워드다. 모종 상태에서 첫 꽃이 피면 이제 본밭에 정식(아주심기)할 때가 됐다는 사인이다. 모종을 심고 고랑까지 찰 만큼 물을 흠뻑 주고 나면 한동안은 물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 1단에 꽃피고 2단 꽃피고 3단에까지 꽃이 피면 이제 물을 줄 때가 됐다는 뜻이다.

완두콩꽃

"꼬투리 달릴 날이 머잖았군"

처음 완두콩을 심고 꽃이 핀 걸 봤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비꽃 모양으로 어우러진 하얀 꽃이 어찌나 탐스럽고도 깨끗하던지. 완두콩은 비교적 농사짓기 쉬운 작물 중 하나이다. 꽃 피고 며칠 후면 반드시 귀여운 아기 콩꼬투리들이 흠벅지게 달려있다. 단단하게 알이 차 오르고 팽팽하던 꼬투리에 주글주글 주름이 살짝 잡히면 거둔다.

고추꽃

"병만 오지 마라"

고추농사 짓다가 탄저병, 역병 때문에 속썩어보지 않은 농민이 몇이나 될까. 잘 자라던 놈들도 장마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시들시들해지기 일쑤다. 우리 역시 작년 고추농사 때 만난 탄저병이란 놈이 어찌나 징글징글하던지 올해엔 고추 농사 규모를 확 줄어버렸다. 자세히 보면 예쁘고 귀여운 맛이 있지만 대부분 신경 안 쓰고 지나치는 순박한 고추꽃의 꽃말은 "제발 병만 오지 말아주세요!"

상추꽃

"상추 따기 끝!!!"

상추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면 이제 상추농사는 정리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하필 꽃대 올라오는 시기에 맞춰 상추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이것처럼 배아픈 일도 없다(작년 우리가 그랬다. ^^;;). 하지만 그냥 섭섭하기만 한 건 아니고, 시원섭섭인데, 그동안의 지겨웠던 상추따기 노가다도 이제 끝이기 때문이다. 쪼그려 앉아서 한 장 한 장 따낸 상춧잎으로 4kg 한 박스 채우기, 이거 보통이 아니다.

부추꽃

"내년에 또 만나자"

부추는 여러해살이식물이라 텃밭 귀퉁이에 아예 부추 전용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잘라먹고 잘라먹어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쑥쑥 올라오는 부추.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보면 작고 하얀 꽃들이 무리 지어 올라와 있다. '내년에 이 자리에서 또 만나자, 부추야.'

감자꽃

"게으른 농부"

울퉁불퉁 못생긴 얼굴을 감자에 비유하곤 하는데, 감자꽃은 생각보다 청순하고 어여쁘다. 우리가 보통 먹는 흰 감자엔 흰 감자꽃이 피고, 자줏빛의 자주감자엔 자주색 꽃이 핀다. 하지만 감자꽃이 피기 시작했다면 한가하게 꽃 감상이나 하고있을 순 없다. 밭에 감자꽃이 무성하다는 건 게으른 농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꽃을 빨리 따내주어야 뿌리에 달리는 감자가 더 튼실해진다.

호박꽃

"제아무리 호박꽃도 장마엔 허사"

꽃 중의 꽃이라면 단연 호박꽃이다. 담장 위에 등불처럼 매달린 호박꽃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한다. 꽃이 진 자리엔 탐스런 열매까지. 하지만 제아무리 호박꽃이라도 장마철엔 아무것도 내놓지 못한다. 유독 길고 지독했던 올 장마 때 호박 값이 어찌나 올랐던지. 보통 때 같으면 돼지먹이로밖에 못 쓰는 못난이 호박들도 대접받으며 팔려나갔다. 우리 밭 호박들도 장마철엔 목숨 붙어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겨우 명줄 유지만 하더니, 요새는 앞 다투어 열매들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