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의 기세가 며칠 동안 꺾일 줄을 모릅니다. 잠깐 갠 듯 싶다가도 금방 땅을 파헤칠 정도로 난폭하게 쏟아져 내리는 매서운 비.
수확 시기가 코앞에 다가온 단호박이 걱정이 되어 단호박 밭에 나가봤습니다. 단호박 밭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지라 아무래도 마을 안 작물들에 비해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하게 됩니다.며칠 동안 밭고랑에 물이 괴어있는 상태인데 땅에 맞닿아있는 단호박이 괜찮을까 싶어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몇 개는 벌써 흐물흐물 짓물러져 있더군요. 아뿔싸, 긴급 단호박 수확 작전 개시!
생각보다 단호박 양이 많아 집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더 가져와 수확한 단호박을 주워 담았습니다. 며칠 더 익혔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물속에서 짓물러져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 사정없이 가위질을 했지요.드문드문 흩날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단호박을 거둬들인 후 집에 들어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흙탕물이 튄 단호박 겉면을 걸레로 하나하나 닦아내고 안방에 신문지를 깔았습니다. 이제 단호박을 쌓아두어야지요.
왜 쌓아두냐구요? 수확하고 나서 최대한 빨리 먹는 것이 좋은 대부분의 야채들과 달리, 단호박은 수확 후 약 한 달 정도의 후숙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후숙 기간을 거치면 당도가 높아져 훨씬 더 맛있는 단호박이 되지요. 속이 덜 여물었다든가 하여 문제가 있는 놈은 이 기간 동안 썩어 진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별도 됩니다. 후숙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고, 습기와 직사광선이 없는 실온에 그냥 방치해두면 된답니다.
거의 창고처럼 쓰는 안방(겨울에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안방을 폐쇄하고 작은방에서 자기 시작한 것이 계속 이어져 지금은 안방이 그냥 이름만 안방입니다 ㅠㅠ) 이곳저곳에 단호박을 쌓아올렸습니다. 바닥에도 깔고, 진열장에도 올리고... 결국 온통 사방이 단호박 천지가 됐네요.
여기저기 쌓여있는 위풍당당한 모습의 단호박들을 보니, 옛날에 봤던 <토마토 돌격대>라는 B급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토마토들이 때굴때굴 굴러다니며 지구인을 공격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영화였죠. 왠지 살짝 으스스해지는군요. ^^;;어쨌든 단호박 돌격대, 아니 단호박들이 별 탈 없이 후숙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한 달 뒤 회원들 집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