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보는 비 일기예보다. 1주일 내내 하루만 빼놓고 비 예보다. 재작년 8월에 정말 한달 내내 비가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하루 이틀 차이로 할 일을 놓치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르며 가을 작물 재배를 아예 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 때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어서 오늘부터 비가 계속된다는 예보에 나는 밭에 나가 일하고, 아내 혼자 농산물 발송 작업을 했다. 평소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해서인지 택배 차량 올라오는 시간까지도 작업을 마치지 못해 택배 기사님이 박스 포장 마무리 작업을 도와줬다고 한다. 발송 작업을 끝내고 내려온 아내까지 합류해 안간힘을 쓰며 밤 9시까지 씨를 넣었지만, 목표량의 2/3정도만 채우고 깜깜해서 더 이상 일을 못하고 들어왔다.
비 안온다고 너무 투덜댔나보다. 정말 비가 많이 내린다. 이렇게 비가 오면 농사 일 하기는 곱절로 힘이 든다. 작물은 잘 익어가지 않고, 곰팡이병이나 흰가루병이 더 심해지고, 밭은 푹푹 빠지고, 일할 의욕도 안 나고… 그래도 농민들은 모두 우비를 입고 밖에 나가 논두렁을 손보고 밭에 작물을 심는다. 나이 드신 분들이 우비 입고 비 맞으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비 와서 일하기 힘들다고 투덜대던 말이 싹 들어간다.
올해로 5년차 농부라지만 가뭄이나 장마, 태풍 앞에선 언제나 허둥댄다. 일은 계획대로 안 되고, 힘은 부치고, 마음만 앞서간다. 농사 기술도 아직 턱 없이 부족하다. 농사일이라는 게 왕도가 없고 배울 게 끝이 없나보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부족해지는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