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면 시골 마을은 도시에 나갔던 자식들이 돌아와 북적북적한다. 밭둑 길에 차들이 빼곡이 들어서고 하얀 얼굴의 도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민다. 하지만 귀농자들이 주로 모여 사는 우리 마을은 명절이면 모두 도시에 사는 친지들에게 가느라 텅 비어 버린다. 우리는 하우스에 양상추를 키우고 있어서 온도와 물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 요즘 같이 일교차 큰 날씨에 하우스 문 제대로 여닫아 주는 것, 물 조절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부모님 댁에는 지난 일요일에 미리 다녀오고 추석 연휴 동안엔 마을에 남아 있었다.
텅 빈 마을에 우리만 있다. 사실 농사철에는 다들 바빠서 이웃들과 만날 틈도 없이 지낸 날이 많았지만 그다지 심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만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좀 적적하고 심심했다.
우리집 뿐 아니라 이웃들의 하우스 문까지 열어주는 일로 추석 아침을 시작했다. 평상시 하우스 2개를 열다가 7개를 열어주려니 꽤나 바빴다.
이웃집에서 키우는 닭 모이도 줘야 한다. 낯선 사람이 와서 밥을 주는데도 허겁지겁 달려와 모이 쪼아먹느라 바쁘다.
윗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아롱이 밥 주기도 우리한테 맡겨진 임무.
오후엔 내내 땅콩을 캤다. 성묘 가느라 오가는 사람들이 추석날 일하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겨우 두 줄 심었는데, 땅이 딱딱해서 어찌나 캐기가 힘들던지. 원래 모래땅에 심어야 잘 된다던데 이유를 알 것 같다. 옆 고랑에 심은 고구마는 더 문제다. 몇 개 캐서 먹어보니 맛은 기가 막힌데, 그 딱딱한 땅 깊숙이 박힌 고구마를 어떻게 캐야할지.
작년에는 양상추를 하우스 두 동에 심었으나 한 동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수확량이 적었다. 올해도 똑같이 두 동을 심었는데 작년보다 나름대로 농사기술이 늘어서 두 세배는 소출이 더 나올 것 같다. 추석 보내러도 못 가고 양상추에 물주고, 목초액 등 기피제 뿌려주고, 온도 관리 해주며 정성을 쏟았다. 농사는 경험해보지 못하면 배울 수 없는 일이 많다. 작년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주변에서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형님들의 조언까지 합쳐져 지금까지는 양상추가 잘 자라고 있다. 수확은 10월 20일 이후가 될 듯.
텅 빈 마을을 보름달이 커다랗게 채우고 있다. 추석 전 며칠 동안 사과밭에서 품일 하느라 정신 없이 보내서인지, 느긋하게 보름달을 바라보는 마음이 평화롭다. 이제 우리의 귀농 2년차 농사도 거의 정리되어 간다.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훨씬 좋아졌다. 가을을 맞아 요즘 시골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가 재배하는 고추며 쌈배추, 호박 반찬으로 밥 세끼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보름달 보며 마음속으로 가만히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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