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농부의 요리_ 냉이들깨파스타와 봄동무침
낮에는 햇볕이 제법 따뜻해 봄날 같습니다. 봄감자 심을 밭을 준비하려고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갔더니 작년에 수확하고 남은 떨거지 배추들이 겨우내 살아남아 무럭무럭 자라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봄동을 수확하게 된 것이죠. 그냥 갈아엎기엔 아까워서 다 뽑아다 손질해 마을 할머니들께 가져다 드렸더니 너무나 좋아하십니다. 시골 할머니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 마을 할머니들도 공으로 남의 것 얻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시는 편인데요. 파릇파릇한 봄동은 정말 반가우셨나봅니다. 안 받을 거 뻔히 알면서도 꼬깃꼬깃한 5천원을 건네시며, 봄동 좀 더 갖다 달라고 부탁까지 하시네요.
이렇게 좋아하시니 드리는 마음도 기뻐서 밭에 남은 작은 배추까지 알뜰히 다 수확했습니다. 봄동 수확하는 김에 그 옆에서 무성하게 자라난 냉이도 한 소쿠리 캤습니다. 바깥 땅은 아직 겨울 왕국이지만, 하우스 안에선 냉이가 꽤 캘 만큼 자랐습니다. 황량한 2월, 농부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바로 이 냉이와 봄동입니다.
냉이의 단짝은 당연히 된장입니다. 멸치 우려낸 물에 된장 한 숟가락 풀어 넣고 깨끗이 씻은 냉이 몇 웅큼 뿌리 채 풍덩 빠뜨려 끓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냉이 된장국이 되지요. 아니면 데친 냉이를 된장, 다진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 나물 반찬을 해도 좋고요.
하우스에서 캔 냉이가 꽤 양이 되었나 봅니다. 된장국과 나물 무침을 해먹고도 조금 남았습니다. 색다르게 파스타를 해보면 어떨까요.
냄비에 물을 가득 받아 소금 한 숟가락 넣은 뒤 팔팔 끓으면 깨끗이 씻어놓은 냉이부터 넣고 데쳐냅니다. 30초~1분 정도 데친 냉이를 집게로 끄집어낸 뒤, 냉이 데친 물에 그대로 파스타 면을 넣고 삶아줍니다. 채소 데친 물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요리 시간과 연료도 아낄 수 있고, 비타민이 우러난 물을 이용하는 것이니 우리 몸에도 좋지요.
파스타 소스는 마침 냉동실에 갓 빻은 들깨가루가 있어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팬에서 먼저 양파를 볶다가 멸치 다시마 육수를 한 컵 반 정도 붓고 끓입니다. 들깨가루를 큰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 정도 넣고 약한 불로 걸쭉해질 때까지 끓이다가 집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삶아 건진 파스타 면을 접시에 담고 크림소스처럼 걸쭉해진 들깨소스를 듬뿍 얹은 뒤 고명으로 데친 냉이를 얹어냅니다. 데친 냉이는 미리 잘게 썬 뒤 소금,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쳐두었다가 이용합니다.
배부르게 먹고 난 뒤에도 가뿐한 느낌이 드는 시골 자연 맛 파스타입니다. 곁들이로 식초, 액젓, 깨소금, 고춧가루 조금씩 넣고 무쳐낸 초간단 봄동 샐러드도 잘 어울립니다.
냉이와 봄동까지 밥상에 올렸으니 이제 정말 봄이 멀지 않았네요. 성질 급한 개구리는 벌써 깨어 울기 시작했답니다. 오늘 저녁엔 씨감자 썰어놓아야겠습니다.